“삼성전자 쪽에서 들어오라고 하는데 고민입니다. 당장 회사 규모를 키우는 데는 제격이지만 끌려다니다가 결국에는 고사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첨단 기술을 보유한 국내 중소 제조업체 사장들이라면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삼성전자는 세계 1위 스마트폰 업체답게 협력사로 선정되면 대규모 물량을 주문하면서 순식간에 외형을 키울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협력사로 등록하는 순간부터 분기별, 월별 강도 높은 부품 공급가를 떨어뜨려 수익률이 악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끊임없이 공급사(벤더)를 추가해 단가 인하 경쟁을 벌이게 만들고, 모델마다 협력사를 바꾸는 삼성전자의 관행상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스마트폰 협력사 매출액 추이를 보면 이 같은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단적인 예가 터치 스크린 패널(TSP) 업체들이다. 중소형 패널 주요 공급사인 일진디스플레이는 지난 2011년부터 3년간 영업이익률이 11.21%, 10.82%, 9.08%로 꾸준히 하락했다. 매출액은 지난 2012년·지난해 각각 84%·10%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TSP칩 1위 공급사인 멜파스는 지난 2011년·2012년 각각 6.17%·6.22% 영업이익을 올린 후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0.4%로 급감했다. 하이브리드형 커버유리일체형(G1F) 방식 TSP 공급가가 낮아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스마트폰의 주요 회로를 형성하는 연성인쇄회로기판(FPCB) 업체 인터플렉스와 대덕전자 역시 비슷한 처지다. 인터플렉스 영업이익률은 지난 3년간 7.8%, 6.08%, 0.01%로 변화했고, 대덕전자 역시 8.01%, 7.5%, 0.14%로 하향 곡선을 그렸다.
삼성 계열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삼성전기는 지난 2012년 갤럭시S4 카메라모듈 등을 공급하면서 지난 2012년 전년에 비해 영업이익률이 2.73%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다시 5.62%로 떨어졌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영업이익률 10%대가 붕괴돼 9.59%를 기록했다.
같은 회사 내에서도 무선사업부와 부품 협력사업부는 큰 차이를 보였다. NH농협증권에 따르면 무선사업부에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공급하는 삼성전자 DS부문 시스템LSI사업부는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3.87% 적자로 돌아섰다. 특히 애플과 스마트폰 관련 특허소송을 벌이면서 애플은 자사 AP 파운드리 협력사를 TSMC로 이분화했다. 무선사업부와 애플 간 스마트폰 경쟁에 시스템LSI 사업부가 유탄을 맞은 격이다.
협력업체들은 사업 지속 기로에 몰렸지만 삼성전자 IT·모바일(IM) 부문 매출액은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지난 2012년 매출액 105조8450억원, 지난해 138조8210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도 각각 19조4180억원, 24조9580억원으로 약 5조원 성장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와 한번 손을 잡으면 쉽사리 고객사를 다각화하기 힘들다는 점도 협력사의 최대 난제다. 한 외국계 반도체 업체는 지난해 4월 출시한 갤럭시S4용 아날로그칩을 공급하기 위해 1월부터 모든 생산라인을 비워두고 양산 체제에 돌입했다가 낭패를 봤다. 애플과 거래마저 끊으면서 삼성의 물량 예측(포어캐스팅)량에 대비했지만 갤럭시S4가 판매 부진을 겪으면서 실제 가동률은 기대에 못 미쳤다.
이 회사 관계자는 “그렇다고 어디 하소연할 수도 없고 그저 손실을 떠안는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예측이 어긋나면 그 재고를 떠맡는 건 국내외, 계열사를 막론하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협력사의 숙명이 됐다. 또 다른 협력사 관계자는 “무선사업부가 제시한 물량을 준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타 고객사 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이런 식으로 올인하게 만들지만 정작 물건이 팔리지 않았을 때 재고 부담은 협력사가 떠안게 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신기술을 개발해도 중국 등 다른 업체에 먼저 제안을 하고 삼성전자에 소개하는 사례도 더러 있다”며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와 손을 잡는 게 ‘계륵’처럼 여겨진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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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