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역방송의 역할

전남대 주정민 교수
전남대 주정민 교수

지역방송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지역방송의 역할을 논할 때, 종종 미국 지역방송을 사례로 든다. 미국 지역방송은 지역민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꼭꼭 찍어 제공, 철저하게 지역성을 구현한다.

제작비를 많이 들이지 않고도 지역 커뮤니티 공통 관심사와 의제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제공해 지역민의 서비스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지역의 일기정보, 공공기관 행사, 주민 공지사항, 체육행사, 자녀의 학교 일정 등을 다룬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미국 지역방송 프로그램은 지나치게 시시콜콜해 보일지 모른다. 마치 동네에서 무료로 배부되는 주간 정보지 내용을 방송한다고 비웃을 수 있다. 지역방송도 중앙방송과 동일한 형식과 내용으로 방송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지역민이 바라는 프로그램은 사소하지만 현실 생활에 필요한 내용이다.

모두가 지역방송의 역할을 지역성 구현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지역방송은 프로그램을 제작과정에서 주로 방송사와 제작자의 입장만을 반영한다. 제작자는 지역민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관행에 따라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방송한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프로그램에 지역민의 이해관계나 요구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장비와 인력 면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어 지역민의 외면을 자초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역적인 프로그램은 세련되지 못하고,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로벌하고 전국적인 서비스에 모두 관심을 기울이는 시대에 오히려 지역 밀착적인 서비스가 시청자에게 소구할 수 있다. 지역방송 서비스의 최종 수혜자는 지역민이고, 이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에 목말라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이 외면하는 지역성이라는 영역이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케이블TV에서 지역정보를 새로운 관점에서 제공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어 고무적이다. 케이블TV가 지역매체라는 점에 착안, 지역민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양방향에 적합한 케이블TV 특성을 활용, 지역의 생생한 소식을 전하고, 지역민의 참여를 통해 관심을 유도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시작한 CJ헬로비전의 ‘우리 동네 사랑방’은 지역성을 구현한 대표적 사례다. ‘지역의 행정정보’, ‘초·중·고의 각종 발표회’, ‘생활체육 동호회’, ‘동네 맛 집’ 등의 프로그램을 무료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로 제공한다. TV를 통해 우리 동네 스타와 핫 플레이스를 찾고, 맛 집, 명소, 축제 실황 등의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우리 동네 사랑방’은 지역 현실과 지역민 생활을 있는 그대로 콘텐츠화해 지역민에게 제공하고 있어 지역채널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고 있다. 콘텐츠를 VoD 형태로 제공해 이용자가 편리한 시간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생방송 중심의 지역방송 서비스에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채널이 마치 옛날 정보소통의 공간이었던 ‘정자’, ‘사랑방’, ‘빨래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내년 3월이면 그동안 유예됐던 방송분야 한미 FTA 협정이 발효된다. 자본력이 있는 거대한 콘텐츠 사업자가 우리나라에 진입, 콘텐츠 시장은 보다 경쟁적인 환경이 될 것이다.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차별적이고, 시청자 친화적인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지역방송은 출발이 지역민을 위한 지역성 구현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지역 밀착적인 서비스에 관심을 기울이기 바란다.

주정민 전남대 교수 truejoo@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