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공대를 창조경제 전진기지로](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14/04/25/article_25173850420802.jpg)
최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보고된 공과대학 혁신 방안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공대 교수이자 대학에서 창업한 중소기업 대표다. 우리나라 공대가 산업 현장과 괴리된 SCI 논문 위주의 교육·연구에서 산학 협력 중심의 연구-현장 연계 중심의 교육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나처럼 문제점과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던 상당수 뜻있는 공대 교수와 연구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우리 공대의 문제는 현장과 동떨어진 교육·연구가 지난 수십년간 파행적으로 이뤄졌다는 데 있다. 모든 연구를 SCI 논문이라는 지극히 단편적인 잣대로 평가했다.
BK21사업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대학 지원 프로그램이 이 같은 문제를 가속화한 ‘일등공신’이었다. SCI 논문 수로 교수와 과제를 평가하다 보니 교수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SCI 논문에 매달리게 됐다.
SCI 논문과 관련한 웃지 못할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학에서 다수의 원천 기술을 개발해 기업으로 이전·사업화한 나는 대원생들에게 핵심 연구 결과를 SCI 논문에 게재하지 않도록 했다.
논문으로 제출하려면 막강한 게재 권한을 가진 논문평가자(Editor, Reviewer)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 이들의 요청에 따라 전반적인 내용뿐 아니라 공정 실험 데이터 등 중요한 자료도 보내줘야 한다. 심지어 핵심 기술을 누구든지 알 수 있도록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야 하는 때도 있다. 이때 경쟁국 기업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논문 평가자들에게 핵심 기술이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노출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BK21사업 등의 평가를 좋게 받기 위해서는 어찌됐든 할당되는 SCI 논문 수를 채워야 한다. 핵심 기술이 논문으로 유출되는 리스크를 안고 게재하는 것이다. 아니면 알맹이 없는 이른바 ‘이류 기술’이 게재된 논문으로 건수를 채우는 일이 다반사다.
대학원생들에게도 핵심 내용은 논문에 싣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 열심히 산학 협력을 하고 있는 대학 실험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코미디 같은 현실이다.
한편으로는 현장과 무관한 연구를 해도 SCI 논문만 있으면 국가가 지원하는 연구비와 실험실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다. SCI급 논문 발표를 위해 수시로 외국에 나가 해외 대학과 품위 있게(?) 교류하는 것이 SCI 논문 연구개발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산학 협력 기술은 손에 기름을 묻혀가며 밤을 새워야 나오는 결과물이다. 현장을 제집 드나들듯 하면서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몇십 배나 어려운 연구임에도 보상과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공대 교수는 물론이고 대학원생조차도 산학 연구를 기피하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기술·연구 인력 부족 해소다. 우리나라 이공계 박사 인력의 83% 이상이 대학과 출연연에 근무한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박사급 인력은 4% 남짓에 불과하다.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인 중소기업 기술 역량을 하루빨리 끌어올려야 한다. 이들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켜 국가 경제 핵심 역량으로 키우는 것이 국가적 어젠다라고 할 수 있다.
공대 혁신을 통한 산학 협력 활성화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반드시 이뤄야 하는 필수 사항이다.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산학 협력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공대와 출연연 역량을 결집해야 우리 중소기업들이 세계 시장에 좀 더 쉽게 진입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건대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공대 혁신 실행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실질적인 산학 협력이 전 방위로 확산될 때 우리나라 공대가 창조경제의 든든한 전진기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박희재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장 hjpahk@os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