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 진료 시범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의사의 집단휴진 사태 이후 정부와 의료계가 어렵게 합의를 본 원격진료 시범사업이 채 출발도 못하고 삐걱대는 모습이다. 이달 중에 시작키로 합의한 시범사업은 4월이 다 지나도록 모형조차 도출되지 않았다.
당초 보건복지부와 의협은 지난 25일 의·정 합의 이행추진단 2차 모임을 갖고 시범사업에 대해 진전된 이야기를 나눌 것으로 예상됐다. 구체적 모델도 나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날 자리는 2주 후로 연기됐다. 세월호 참사로 복지부 관계자들이 현장에 투입되면서 의·정 회의에 집중할 여건이 안 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만큼 더 큰 걱정은 심상치 않은 의료계 쪽의 내홍이다. 의협 집행부와 대의원회의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의협 내부혼란이 의·정 합의 이행에 차질을 일으킬지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의료계에서 의·정 합의를 이끌었던 노환규 회장은 지난 19일 탄핵됐다. 의협 회장이 탄핵을 당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이어 27일 정기총회에서는 방상혁 기획이사에 대한 불신임안이 처리됐다. 방 이사는 정부와의 이행추진단에 속해 있어 그에 대한 불신임은 추진단의 재편과 의·정 대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악의 경우 집행부와 이행추진단을 모두 새로 꾸려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탄핵 결정에 대한 법정 공방도 예고돼 의료계 내홍이 단기간 봉합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의료계 쪽이 의·정 합의 이행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그나마 진전을 보인 원격진료 문제가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 이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의료계의 총파업과 환자들의 불편 등 이미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의료와 정보통신기술 융합을 거스를 수 없는 현실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IT 분야 전문가뿐만 아니라 의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다. 원격진료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환자를 위한 원격진료의 해법은 무엇인지 전문가들이 모두 머리를 맞댄 시범사업을 통해 올바른 결론이 도출되길 기다리고 있다. 힘들게 마련된 합의와 논의의 시간이 허투루 쓰여서는 안 된다.
윤건일 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