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관료사회와 `본전` 집착증

[데스크라인]관료사회와 `본전` 집착증

속된 말로 ‘지름신이 강림’해 어떤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하지만 사고 보니 별 쓸모가 없다. 이럴 때 현명한 소비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반값이라도 받고 중고로 파는 것이 합리적이다. 쓴 돈이 아깝고 반값에 팔면 손해보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냥 보관해 두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사용하지도 않을 물건을 묵히는 것은 비합리적 소비다. 감가상각만 발생해 결국 한푼도 못 건지게 될 뿐 아니라 비용이 매몰되어 돈이 다른 활동에 쓰일 기회를 차단하는 문제가 있다.

경제학에서는 매몰되어 버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을 매몰비용(埋沒費用:sunk cost)라 부른다. 즉 의사 결정을 하고 실행한 이후에 발생하는 비용 중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다. 일단 지출하고 나면 회수할 수 없는 광고비나 연구개발(R&D)비 등이 이에 속한다. 매몰비용은 미래에 비용이나 편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합리적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매몰비용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지금까지 투자된 것이 아까워 본전 생각에 투자를 지속하다보면 더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본전을 찾을 생각으로 점점 도박에 빠져들다 결국 파멸의 늪에 빠져드는 도박꾼처럼 말이다.

매몰비용에 집착한 예로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 개발 사업이 있다. ‘초음속 여객기의 실용성이나 수익성이 개발 비용에 한참 못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음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많은 돈을 투입했다는 이유로 사업을 계속 진행시켜 커다란 손실을 입었다. 기존 투자비를 허공에 날릴 것이 두려워 손해를 감수하고 계속 사업을 강행하는 악순환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굴욕을 맞게 된 것이다.

행정학에서도 현재 집행 중에 있는 정책이나 계획에 따라 이미 투입된 경비나 노력·시간 등을 매몰비용으로 본다. 이런 매몰 경비는 합리적인 정책을 결정하는데 제약 요인이 된다. 이미 투자한 시간과 비용을 계속 유지하려는 현상을 보이는 매몰비용 효과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기존 정책이나 계획에 따라 착수한 사업이 진행되어 이미 많은 자금이나 노력·시간을 들였을 때 이를 포기하는 것을 꺼린다. 결국 매몰비용이 새로운 정책이나 계획을 합리적으로 수립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정부 부처의 모습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정권교체로 새로 들어선 정부가 선거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기존 정책·계획을 대폭 수정해 새 계획을 세우려 해도 이미 진행 중인 사업에 투입된 많은 비용과 노력, 즉 매몰비용 때문에 합리적 정책수립이 어렵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세웠지만 아직 성과는 미흡하다. 정부 부처는 말만 창조경제를 외칠 뿐 매몰비용에 집착해 이름만 바꾼 채 기존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공무원사회의 현주소다.

세월호 참사도 관행을 개선하지 않은 관료사회에 많은 책임이 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시스템 모두를 뜯어고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관료사회가 또다시 매몰비용에 집착하다보면 구태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관료사회는 매몰비용을 과감히 포기해야한다. 국가적으로 더 큰 비용과 희생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걸 막는 길이다. 정부부처의 낙하산 인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동안 뿌린 노력과 비용이 얼만데’ 하며 산하 기관장에 집착하는 순간 ‘관피아’(관료+마피아)가 된다. 매몰비용은 과감히 무시하고 새 판을 짜는 것이 합리적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