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슈퍼컴 CPU 사업에 `암(ARM)`처럼 IP 사업모델 검토

미국 인텔이 고성능컴퓨팅(HPC) 사업 확대를 위해 칩세트 공급 일변도에서 벗어나 지식재산(IP)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을 추진한다. 중앙처리장치(CPU)를 직접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암(ARM)처럼 협력사에 관련 IP를 제공하는 것으로 성사 여부에 따라 서버용 CPU 시장 게임의 법칙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준비 중인 슈퍼컴 5호기 도입 사업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측에 CPU 코어 기술을 라이선싱하는 방안을 사업 모델 중 하나로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텔 본사 HPC 담당 고위임원이 올 초 직접 한국을 방문해 이 같은 방침을 설명했다.

KISTI 슈퍼컴 5호기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오는 2019년까지 세계 20위권 슈퍼컴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총 2000억원을 투입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현재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밟고 있으며 통과되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기존 슈퍼컴 4호기의 1차 시스템은 AMD, 2차 시스템은 인텔 CPU가 각각 채택됐다. CPU를 탑재한 서버는 오라클 제품이 도입됐다.

미래부와 KISTI는 슈퍼컴 5호기에 단순히 외산 서버와 CPU를 적용하는 것을 넘어 최대한 국산화를 이룬다는 방침을 세우고 사업을 준비 중이다. 도입 비용 절감보다 국내 슈퍼컴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을 확보하는 데 더 높은 비중을 두는 모습이다.

인텔이 CPU 코어 기술을 IP 형태로 제공할 수 있다는 의사를 한국 측에 전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인텔로서는 일종의 승부수를 띄우는 셈이다.

성사된다면 한국 반도체 기업이 인텔 IP를 제공받아 CPU를 설계·생산하거나 파운드리(위탁생산) 서비스만 제공하는 방식의 모델 등이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이에 가장 근접한 회사다.

인텔이 HPC 사업에서 IP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을 전반적으로 확대할지도 주목된다. 인텔은 일본 HPC 시장에도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까지 HPC 시장에서 서버 업체와 짝을 이뤄 자사 CPU를 공급했던 인텔로서는 영업 전략을 바꾸는 새로운 시도다.

실제 성사 여부를 놓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반도체 기업이 단일 프로젝트 때문에 별도로 CPU를 개발하거나 생산하는 것은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인텔 역시 과거 가전 등 일부 분야에서 IP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하다 중단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인텔코리아 측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국내 슈퍼컴 전문가는 “한국 정부가 슈퍼컴 5호기 사업에서 기술 확보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IP 비즈니스 모델 역시 주목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