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10일 오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회의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2분과 구성원들과 첫 상견례를 가졌다. 참석자들과 돌아가며 악수를 하던 노 당선인은 정보통신부 파견자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정통부는 왜 노(盧) 씨만 인수위에 보냈습니까.”
정통부에서 전문위원으로 파견한 노준형 국장(정통부 장관 역임, 현 김앤장 고문)과 행정관인 노영규 과장(방통위 기조실장 역임, 현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부회장)이 모두 노 씨라는 사실을 알고 한 말이었다. 공교롭지만 이는 우연의 일치였다.
노 당선인의 인수위 인적 구성은 과거 정부와 판이했다. 지연, 혈연, 학연과 무관하게 숨어있는 ‘흙 속의 진주’를 찾고자 노력했다.
신계륜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의 회고록 증언.
“인수위 근무자를 선발할 때 처음으로 다면평가(多面評價)를 적용했습니다. 당선인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인사를 하라고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중앙인사위원회와 청와대 등 관련기관의 인사자료, 전문용역기관에 의뢰한 평가자료를 참고해 해당 부처에서 올라온 3배수 추천자 중 1순위자를 발탁했습니다. 다면평가는 노무현정부의 인사평가 기준이 됐습니다.”
박기영 경제2분과 인수위원(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역임, 현 순천대 교수)도 “해당 부처에서 3배수로 올라온 사람 중 1순위를 추천했다”고 증언했다. 박 위원은 경제2분과에서 정보통신과 과학기술 분야를 담당했기에 이들의 1차 추천권자였다.
노준형 당시 전문위원의 기억.
“같은 노 씨인 만큼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라는 격려의 의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해 1월 14일.
인수위원회는 노무현 당선인이 참석한 가운데 3차 전체회의를 열어 새 정부가 추진할 국정과제 12개를 확정했다.
노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정책을 검토할 때 민주당의 공약은 어떻게 되어 있고 한나라당 공약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또는 대통령선거 때 갑자기 만들어진 공약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 이전부터 계속 추진해왔던 공약은 무엇인지 등 각각의 내력을 파악해 각 부처의 생각과 민주당의 생각, 한나라당의 생각이 유사하고 합의되기 쉬운 것부터 우선적으로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고 당부했다.
인수위원회는 이에 앞서 7일 열린 2차 전체회의에서 10개 국정과제를 선정했다.
10개 과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부패 없는 사회 봉사하는 행정 △지방분권과 국가 균형발전 △참여와 통합의 정치개혁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 △참여복지와 삶의 질 향상 △국민통합과 양성평등 구현 △교육개혁과 지식문화강국 구현이다. 여기에 △미래를 열어가는 농어촌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 2개를 추가해 이날 12개의 국정과제를 최종 확정한 것이다.
인수위는 9일 국정과제별 TF를 구성했다. 과제별 추진전략과 세부과제를 도출하기 위해서였다.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 국정과제 TF팀장은 박기영 인수위원이 맡았다.
박기영 인수위원의 회고.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은 노무현 당선자의 대선 공약이었습니다.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을 묶어서 국정과제로 확정한 것입니다.”
부팀장은 박준경 인수위원이, 실무간사는 최수만 행정관(한국전파진흥원장 역임, 현 오비맥주 부사장)이 임명됐다. 팀원은 노준형, 박준경, 전기정(청와대 혁신기획비서관 역임, 현 상명대 교수), 김종갑(산업자원부 차관 역임, 현 한국지멘스 회장), 이만기(기상청장 역임, 현 인천종합에너지 대표), 김영식(교육과학기술부 차관 역임, 현 백석문화대 총장), 김용일(현 한국해양대 교수), 윤상주 씨(공군 준장 예편, 한국항공우주산업 상무 역임) 등이었다.
박기영 인수위원은 국정과제의 세부 추진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내부에 정보통신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 2개 팀을 구성했다. 정보통신 분야는 전기정 전문위원이, 과학기술 분야는 전도영 교수(인수위 자문위원 역임, 현 서강대 교수)가 각각 팀장을 맡았다.
정통부는 당시 주요 정책과제로 △정보화 추진체계 강화 △디지털방송 조기 구현을 인수위에 보고했다.
노준형 당시 전문위원의 증언.
“당시 인수위에 정보통신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 포함되지 않아 내심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전기정 교수가 정보통신 분야를 대변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정보통신 일등국가를 구현하기 위해 ‘정보화의 전면화’를 추진전략으로 제시했습니다.”
최수만 당시 실무간사의 말.
“당시 팀장은 파견 공무원이 아닌 외부 교수들이 맡았습니다. 각 팀에는 해당 부처 전문위원과 행정관 외에 민간 전문가들도 참여해 세부 추진전략을 만들었습니다.”
전략 수립 과정에서 기존 추진과제가 과학기술부 관련 항목 중심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정보인프라와 산업을 담당하는 정통부나 산자부 관련 항목을 추가했다.
이에 따라 △세계 일류 IT산업 육성 △지식정보 기반으로 산업고도화 추진 △과학기술 혁신과 이공계 사기 진작 △효율적인 연구관리 체계 구축 △경쟁력 있는 과학기술인력 양성 △신산업 육성 및 주력 기간부품산업 고도화 △일자리 창출 6개로 추진과제를 확대했다.
이 작업은 중노동이었다. 새 정부 국정 세부 지도를 만드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노영규 행정관의 말.
“낮에는 인수위에서 근무하고 밤이면 정통부로 달려가 인수위에 제출할 추진전략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세부전략을 장관까지 보고한 뒤 다음날 인수위에 냈습니다. 밤샘도 많이 했습니다.”
박기영 인수위원의 회고.
“최종 보고서는 내가 직접 정리했는데 300여쪽에 달했습니다. 산업 측면은 진대제 당시 삼성전자 사장(정통부 장관 역임, 현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CEO) 등 외부 인사의 도움을 받았는데 당시 인수위에 전략보고서를 제출한 TF는 우리 팀밖에 없었습니다.”
그해 1월 25일 토요일 오후. 사상 초유의 인터넷 마비 사태가 발생했다. 이른바 1·25 인터넷대란이다. 자칫 국가 재앙으로 번질 수 있었지만 정통부의 신속한 대응으로 27일부터 인터넷은 정상화됐다.
노준형 당시 전문위원의 증언.
“정통부의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으로 월요일부터 인터넷은 정상화됐습니다. 정통부가 운(運)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정권 인수기인데 만약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평일이었다면 국가 재난사태로 번질 수 있었습니다. 주말이지만 인수위 자료 제출 등으로 정통부 직원들이 거의 자리를 지켜 신속히 대응했고 특히 이상철 장관이 KT 사장 출신이어서 상황을 잘 관리했습니다.”
인수위는 1월 27일 경제2분과 주재로 정보통신부 관계자, 정보·보안 자문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터넷대란 대책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박기영 인수위원과 전기정·노준형 전문위원, 윤영민 한양대 교수, 정태명 성균관대 교수, 정통부 관계자 등이 참석해 원인 규명 및 범정부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박기영 인수위원은 “주말에 대란이 발생해 국가자료 등이 훼손되는 사태가 없었지만 경제를 포함한 국가 전체 시스템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보안시스템을 국가적 차원에서 보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해 1월 21일 오후 4시.
인수위 경제2분과위원회는 노무현 당선인이 참석한 가운데 ‘과학기술 혁신과 신성장 전략’에 대한 국정토론회를 1시간 30분간 개최했다.
토론회에는 임채정 인수위원장(국회의장 역임)과 김진표 인수위 부위원장(부총리 역임, 현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후보), 김대환 간사(노동부 장관 역임, 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 박기영 인수위원 등 인수위 측 22명과 채영복 과학기술부 장관(대통령자문 국민원로자문회의 위원 역임), 신국한 산업자원부 장관(17대 국회의원 역임), 이상철 정보통신부 장관(현 LG유플러스 부회장), 김신복 교육부 차관(현 서울대 명예교수), 오치운 국방부 차관보(합참 군구조발전부장 역임) 등 정부 측 19명이 참석했다.
노무현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과거 이룩한 과학입국, 공업입국 경험을 살려 제2의 과학기술입국을 건설해 달라”면서 “1만명을 먹여 살리는 한 명의 인재를 키우는 정책, 핵심 기술을 육성할 수 있는 인력양성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해 1월 29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인수위 내 분과별로 산학연 등 전문가들이 주축이 된 자문위원단을 구성했다. 경제2분과는 △산업정책 △과학기술 △정보통신 △인적자원개발 및 일자리 창출 분야에 모두 48명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정보통신 분야 자문위원은 이주헌 한국외대 교수(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역임), 윤영민 한양대 교수, 이남용 숭실대 교수, 김혜정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장, 서지현 여성벤처협회 이사, 송위진 박사(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이윤덕 연구원(삼성전자 통신연구소 차세대연구팀 수석연구원), 장흥순 벤처협회장(현 서강대 교수), 노규성 선문대 교수, 김춘호 KIET 원장(한국뉴욕주립대 총장), 이우일 서울대 대학산업지원단장, 이재웅 다음 사장 등이다.
인수위는 2월 4일 IT자문위원들과 정보통신 일등국가 건설 방안을 논의했고 새천년민주당과도 정책협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박기영 인수위원과 노준형 자문위원, 윤영민 한양대 교수, 최수만 간사 등이 참석해 이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최수만 간사의 말.
“자문위원들과 당측의 의견을 듣고 부족한 점은 국정과제에 반영했습니다.”
그해 2월 21일.
이렇게 만든 과학기술 중심 사회 구축 과제는 노무현 당선인 주재 제7차 전체회의에서 참여정부 5년의 IT와 과학기술 국정지도로 확정됐다. 세부과제는 △세계 일류 IT산업 육성 △지식정보 기반으로 산업 고도화 추진 △국가 과학기술 시스템의 혁신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기반 강화 △지역혁신 역량 강화 △과학문화 확산을 통한 신뢰 사회 구축 △지식 기반 사회에 부응한 일자리 창출 등이었다. 이 국정지도는 참여정부가 가야할 미래 희망봉이었다.
IT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