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 블랙코미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대학로에서나 접할 법한 사회 부조리극에 국민 모두가 분노하고, 슬퍼한다. 연극이기를 바랬지만, 리허설 없는 현실을 깨닫고 참담해 한다. 무대의 불빛이 서서히 꺼지면서 국민을 분통케 한 우리 사회의 적들도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 생명보다 의전이 중요한 대한민국의 민낯도 드러났다. 사익에 눈이 먼 기업인, 생명연장의 꿈을 키운 퇴직 관료들은 발가벗은 임금님이 됐다.
역사에 가정이 있을 수 없지만, ‘골든타임’이 지켜졌더라면 어떠했을까. 사고 당일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을 지켰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공무원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배는 서서히 침몰했다. 꽃다운 청춘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그 순간, 국가는 없었다. 과거 숭례문 화재, 국가재난망 구축부재와 마찬가지로, 세월호 사고는 ‘결정은 네가 하라, 책임도 네가 져라’ 식 관료주의가 초래한 참사다.
만약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 불리는 삼성이 사고 당일 구조에 나섰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해답은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다만 탈출자만 있고 구조자는 사실상 제로(0)인 이번 세월호 재난대응 결과와는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민간영역과 공공영역의 가장 큰 차이점은 책임소재에 있기 때문이다. 결정을 하고, 이에 따른 책임을 민간은 진다.
실제 사안은 다르지만, 이건희 회장에게 급성심근경색이 발생했어도 위기를 넘긴 것은 ‘골든타임’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생사를 오가는 급박한 순간에 비서진은 결정을 내렸다. 세월호처럼 삼성서울병원과 순천향병원을 두고 결정을 못내렸다면 결과는 어떠했을까.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지 9일이 지났다. 이 회장이 건강이 호전되고 있다고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사실상 이병철, 이건희 회장에 이어 3세 경영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봤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삼성을 이끌어온 이건희 회장이 없는 삼성은 어떠할까. 한때 ‘삼성공화국’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의 강력한 영향력을 한국사회에서 유지할 수 있을까. 또 시스템경영을 바탕으로 한 ‘관리의 삼성’이라는 수식어가 계속 따라다닐지 의문이다. 경영승계를 위한 준비작업이 로드맵에 따라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업지배구조 개편 및 무노조 경영 등에 대한 외풍은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하다. 순환출자를 바탕으로 한 1인 지배체제는 중장기적으로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재용 부회장(JY)에게는 아킬레스건처럼 따라 다니는 ‘e삼성’ 사건을 극복하면서 경영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운명적 ‘골든타임’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요체는 부친처럼 수조원, 수십조원에 달하는 투자결정이 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만한 통찰력과 배포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
항공기 조종사들은 비행에서 가장 위험한 이륙 후 3분과 착륙 전 8분을 합친 ‘마(魔)의 11분’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 현재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부친으로부터 경영 바통을 이어받아 연착륙하기 직전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골든타임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삼성의 명운이 달려 있다. 결국은 사람이다. 그에게 인재를 골라 쓸 수 있는 통찰력이 삼성의 차기를 약속할 수 있다.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오너경영으로 대변되는 재벌은 사람을 제대로 골라 쓸 줄 아는 훌륭한 리더가 존재할 때 가장 효율적인 구조라고….
김원석 글로벌뉴스부 부장 stone20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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