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SW 발주 문화부터 뜯어 고치자

[데스크라인]SW 발주 문화부터 뜯어 고치자

개정 소프트웨어(SW)산업진흥법이 시행된 지 1년 6개월여가 지났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엇박자로 인한 불협화음만 가득하다.

시행 원년인 지난해로 돌아가보자. 미래부 출범과 함께 대표적인 산업 육성법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대통령이 나서서 정책관을 임명하면서 힘을 실어주고 기회가 될 때마다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지금은 어떤가. 지난해 임명장을 받았던 정책관은 타 부처로 발령났고 그 자리는 한 달 가까이 비어 있다. 후임이 정해졌다지만 언제 채워질지 오리무중이다. 정책 추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그동안 숙원 과제로 꼽았던 SW 유지보수요율 인상안은 관계 부처 간 협의를 거듭하다 뒤늦게 나와 내년도 공공기관 예산 반영이 불투명한 상태다. 업계는 규모가 아쉽지만 4년 만에 이뤄진 인상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이지만 시기를 놓친 탓에 다시 1년을 허비할 공산이 커졌다.

최근에는 미래부가 SW 협회·단체 관계자들이 스스로 산업 진흥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는 ‘자아비판’ 대회를 준비했다가 세월호 사건 여파로 백지화됐다는 후문이다. 어렵게 법을 만들면서 멍석을 깔아줬는데 SW 업계가 제대로 일을 못해 진흥이 안 됐다는 게 추진 배경이었다. 무산되지 않았다면 SW 업계가 산업 활성화를 망친 주범이라고 자백(?)하는 희한한 대회가 열릴 뻔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에서는 ‘남 탓’으로 몰아붙이는 정부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과 함께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푸념도 나왔다.

그동안 개정법은 어떻게 됐나. 시행부터 대기업 참여 제한이라는 특단의 조치로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그동안 온갖 편법이 동원되면서 실효성은 이미 크게 떨어졌다. 또 대기업 역할을 대신한 일부 중견 IT서비스 기업들의 악행을 전하는 얘기도 무성하다. 원도급 업체들이 끼워 넣은 중간 사업자들에게 대금을 떼였다는 SW업체들은 수두룩하지만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는다. 법 시행 이전보다 더 힘들다는 하소연마저 나온다.

편법이 만연하자 이를 막기 위해 정치권이 나서서 추가로 개정하는 법안을 내놨다. 이마저도 SW 업계가 가장 고통을 받는 다단계 하도급 문제는 이견에 부딪혀 법안에서 빠졌다. 거듭된 개정을 거치다 보니 ‘누더기 법안’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편법이 나올 때마다 법안을 개정한다면 SW산업 활성화는 고사하고 개정만하다가 시간을 다 허비할 판이다.

이제는 다른 해법을 찾아보자. 생태계를 살리는 첫걸음은 수요자부터 바뀌는 것이다. 그동안 산업 활성화를 외치며 공급자 관행을 고치는 데 집중해왔다. 하지만 발주를 맡은 공무원들은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쪼개서 써야 하고 잦은 보직 변경으로 전문성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니 여전히 IT서비스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 지속될 뿐이다. 공급보다는 발주 문화를 개선하는 게 SW산업 활성화의 지름길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미국 등 일부 국가와 같이 정보화 전문가를 발주 담당자로 임명할 것을 제안한다. 전문가에게 책임과 함께 권한도 철저하게 보장해야 한다. 모처럼 정부가 나서서 육성을 약속했으니 예산도 챙겨줘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야 소신이 생기고 편법도 사라진다. 진정한 ‘진흥’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바란다.

서동규 SW산업부장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