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1993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아현동 가스기지 폭발사고, 충주호 유람선화재사고(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직후인 1995년 7월 재난관리법을 제정하고, 삼풍백화점붕괴 피해지역에 대한 특별재난지역을 처음 선포했다. 당시 정부는 내무부에 재난관리 전담국을 설치하고, 긴급구조체제를 정비해 예방-대비-대응-복구에 이르는 단계별 재난관리책임기관을 지정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1995년 대구 상인동 지하철가스폭발, 1996년 고성 산불, 1999년 씨랜드 화재참사 등 20세기 마지막까지 재난이 끊이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육·해·공, 지하, 산림, 내수면 등 전국토가 재난으로 얼룩졌고, ‘압축 성장과정에서의 부실시공 후유증’과 ‘부도덕한 기업가와 공무원의 유착’ 관행 ‘빨리 빨리 문화와 안전 불감증’ 등 고질병도 고쳐지지 않았다.
2003년 19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구지하철방화사건의 수습 후 2004년 6월 재난관리법제정 후 꼭 10년 만에 재난관리 전담기구인 소방방재청을 개청했다. 그러나 2000년대 새로운 위협은 사회양극화에 의한 불만, 개인주의 사회풍조, 국가산업 인프라의 노후화, 초고층 복합건축물의 등장, 에너지사용량의 증가,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 등 기존의 전통적인 요인과 함께 우리사회를 더욱 위험사회로 몰아가고 있다.
사고가 나고 수습이 되고 난 이후 전체 재난안전관리체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되고 개선되었는지 살펴보면 현장의 변화는 미미하다. 정말 놀랄 정도로 과거 재난사고와 판박이 형태로 같은 재난유형들이 지속적으로 되풀이 되고 있다. 우리 체계가 아무리 예방을 성실히 해도 사고나 재난 자체를 완벽히 막기는 어렵다. 특히 자연재난의 경우 계절마다 어김없이 발생하기 때문에 아무리 철저히 대비하더라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피해 규모도 상상을 초월하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재난관리시스템을 구축해온 경험에서 살펴보면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여전히 부족한 우리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크게 두 분야로 나눠 살펴보면 먼저 구조장비의 한계를 들 수 있다.
수요가 제한적이다 보니 제대로 된 구조장비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산소탱크에서부터 선체진입 구조장비 등 어느 것 하나 안심하고 도움을 받을만한 장비가 없다. 칠흙 같이 어두운 바닷 속에서 구조대원이 직접 손으로 더듬어서 실종자를 수색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장비의 열악함은 심각했다. 과거 이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획기적인 기술진보가 없었다.
재난관리 R&D는 우리나라 전체 R&D예산의 1.26% 정도 수준이라고 하니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투입될 장비가 예전 수준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꼭 정부가 책임지고 R&D를 다할 수는 없지만 특성상 수요처가 넓지 않고 고가일 가능성이 많아서 정부가 지원하고 정부가 구매해주는 방식이 아니면 R&D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인다.
다음으로 정보시스템적 관점에서 살펴봐도 아직은 우리 재난관리체계는 걸음마 상태다. 이미 수차례 언급됐지만 승선권 발권 조차 전산시스템으로 되어있지 않는 탓에 승선인원의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했으며 선박이 출입항할 때 사용되는 신고서 조차도 제대로 갖추지 않아 인천항을 출발한 세월호에 탑승한 승객들의 명단과 화물 등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했다. 선박관리체계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인천항에서 출발한 세월호에 관련된 많은 자료들은 도착지인 제주해경에서 조차도 전혀 상황파악이 안된 것이다. 연안 통신시스템도 통합이 되지 않아 진도VTS와 여수VTS는 해경에, 나머지 15개소의 VTS는 해수부에서 관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정보시스템화하고 통합하지 않으면 다시 같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현장관제와 인적·물적 지원에 관해 아직도 주먹구구식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으니 오보와 혼동이 빚어지고 어떤 물자는 부족하고 넘치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제 모든 것을 개혁하고 정비하고 훈련할 몫이 국가안전처로 넘어갈 것이다. 우리 사회전반에 걸친 수많은 문제가 기구만 만들어졌다고 바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적 협조와 예산 지원, 국가안전처의 전문성과 개혁성, 평상시 예방하고 대비하며 그럼에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고에 즉시적으로 대응하고 복구하는 재난전반의 체계를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달려있다. 제대로 대책과 실천으로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구가 되길 바란다.
강은희 국회의원(새누리당) coevol7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