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민은행과 의사협회

[기자수첩]국민은행과 의사협회

신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자신의 말이나 상대방과의 약속을 지킬 때 비로소 신뢰가 쌓이고 때론 지지까지 얻을 수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명제를 국민은행과 의사협회는 모르는 것일까. 최근 이 거대 기업과 단체가 스스로 신뢰를 허무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순간이었다. 지난 1년 넘게 진행했던 테스트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결정이 뒤집히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산시스템 교체 방안을 놓고 내홍에 휩싸인 KB국민은행 얘기다. 국민은행 사태는 입찰 진행 과정 중에 불거졌다. 자신들이 결정해 진행했던 사안을 막판 문제가 있다며 뒤집은 것이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그동안 준비 과정에서는 이를 왜 밝혀내지 못하고 뒤늦게 이번 사태를 야기했는지 의문이 든다. 국내 최고 은행이라고 자부하는 국민은행 내부 의사 결정 과정에 결국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해석되지 않는다.

의사협회의 모습도 이와 닮아가고 있다. 정부와 의사협회는 지난 3월 진통 끝에 원격진료 시범사업 추진 등의 내용을 담은 의정협의안을 도출해냈다. 이 안은 의사협회 회원들의 투표에서도 지지를 얻어 결과를 수용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는 이행 사항을 점검하는 추진단을 꾸렸고, 최근에는 이달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시행하는 방안까지 마련했다.

그런데 의사협회 내부에서 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범사업 진행 입장인 의협 집행부와 달리 대의원회를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시범사업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회원 상대 설문조사를 통해 원격의료에 대한 의견을 다시 묻겠다고 밝히는 등 갈등을 보이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국민은행과 의사협회의 내부 불협화음은 신뢰의 의미를 다시 곱씹게 한다. 신뢰를 얻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이를 무너뜨리는 건 한순간이란 생각에서다. 국민은행과 의사협회는 왜 내부 입장도 하나로 정리하지 못해 스스로 기회를 놓치고, 그동안 어렵게 쌓은 신뢰도 훼손하고 있는지 이제는 오히려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게 한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