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재송신료 갈등에 팔짱 낀 정부…가이드라인 없어 매년 논란

월드컵 방송 재전송료를 놓고 지상파와 유료방송 업계 간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지상파TV의 가입자당 재전송료(CPS) 부과가 매년 논란이 되고 있지만 산정 기준과 가이드라인 제정에 정부가 여전히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공적 책무를 지닌 방송산업에 정부가 공정한 시장규칙을 만들어주지 않으면서 힘의 논리에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라질 월드컵 재전송료에 관해 유료방송사업자와 지상파방송사업자의 입장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유료방송사업자는 “이미 지상파에 CPS 280원을 지불했기 때문에 추가 재전송료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상파는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IPTV사업자가 콘텐츠 비용을 지불한 사실이 있다”며 “이번에도 추가 재전송료를 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미래부 관계자는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 월드컵 재송신료로 마찰을 빚고 있는 양 업계의 의견을 청취했다”며 “(재전송료 공방을) 원활히 해결하기 위한 여지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유료방송사업자와 지상파가 기존 입장을 고수해 별다른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사업자 간 협상이 진행되고 있어 (정부가) 개입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방송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공적 책무를 지닌 방송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사업자에 시장을 맡기면서 지상파 중심의 기형적 생태계가 조성됐다고 지적했다. 재전송료 산정 기준에 관한 가이드라인과 지상파 의무재송신 범위를 정하지 못하고 무대책으로 일관하면서 월드컵 재전송료를 둘러싼 업계 간 갈등까지 촉발했다는 설명이다.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합리적 콘텐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상파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제시하고 해마다 인상률을 높이는 것은 정상적 판매 행위로 볼 수 없다”며 “월드컵 재송신료를 요구하는 것도 명확한 근거가 없지만 정부는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당초 방통위는 지난 2012년 지상파 재송신 제도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방송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의무재송신 범위를 정하지 못했다. 지난해 3월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이 지상파 재송신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방송법과 IPTV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까지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해 계류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의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유료방송사업자의 역할이 필수지만 지상파 의무재송신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분쟁 소지가 크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지상파 의무재송신 범위는 한국방송공사(KBS) 수신료 인상과 연계해 검토했다”며 “이미 발의된 법 개정안을 기반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이지만 국회 상임위 통과 시기는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