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고객정보 유출, 불법대출, 횡령과 위조 등 물의를 일으킨 금융사 임직원을 대거 중징계한다. 전·현직 최고경영자(CEO)까지 포함한 무더기 중징계는 매우 이례적이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말부터 잇따라 발생한 금융사고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재발을 막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피해가 금융소비자까지 이어진 경우라면 더욱 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의문이 남는다. 금융사고에 과연 금융당국 책임은 없는가. 금융사고를 통해 구조적인 문제점이 드러났다. 상당수 금융사는 정해진 절차조차 따르지 않았다. 적발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거나 드러나도 별 탈 없이 넘어가리라 판단했다는 얘기다. 달리 말하자면 금융당국 감시 감독 기능이 유명무실했다는 얘기다. 당국도 금융사고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금융당국이야말로 금융사고 뿌리라는 비판도 나온다. 끊임없이 비판을 받는 낙하산 인사, 금융소비자보다 금융사에 더 기운 정책, 이로 인한 관치금융이 금융사고를 키운 온상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비판이 나오는 마당에 금융사만 문책하니 ‘제 눈의 들보를 못 본다’ ‘책임 회피성 가지치기 문책’이라는 비아냥거림이 금융사들 사이에 나돈다.
떨어진 신뢰는 문책 권한 자체에 의문을 야기한다. 금융당국은 준사법기관임에도 권한이 너무 강력하다. 마치 경찰, 검찰, 법원 기능을 합쳐놓은 듯하다. 지분 하나도 없는 금융사 임직원의 ‘생살여탈권’까지 가졌다. 금융사 이사회는 물론이고 사법기관이 결정할 사안까지 직접 판단한다. 금융당국이 칼과 방패를 다 쥐고 흔드니 관치금융을 벗어날 수 없다.
금융사가 한번만 잘못해도 민형사상으로 막대한 배상이나 처벌을 받는다면 금융당국 제재가 없더라도 알아서 자정한다. 금융사 이사회도 제 기능을 회복한다. 낙하산은 아예 발을 못 붙인다.
이번 문책 이후 금융사 임직원들이 대거 물갈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금융당국과 그 정책에 대한 책임 규명과 혁신이 없이 새로 바뀐 물이 깨끗해질지 정말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