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과 중국이 사이버 안보를 중심으로 충돌했다. 미국이 중국의 사이버 해킹에 맞서 ‘중국군 기소’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사실상 ‘미중 사이버 신냉전 시대’에 들어섰다. 전문가들은 그 동안 물밑에서 전개돼 왔던 정보전쟁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고 해석했다.
◇사건의 발단은?
미국 법무부는 지난달 펜실베니아주 연방지방법원에 왕둥 등 중국 군부대 소속 장교 5명을 산업스파이와 기업비밀절취 등 6개 혐의로 기소했다. 산업스파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고 징역 15년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이들 5명은 웨스팅하우스와 US스틸 등 5개 기업과 미 철강노조(USW) 컴퓨터를 해킹해 피해 기업의 제품이나 재무구조에 대한 기밀 정보를 빼냈다. 법무부는 해당 기업과 경쟁 관계였던 중국 기업들이 이익을 봤다고 주장했다.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중국 군인에게 경제 스파이 혐의가 적용된 이번 사건은 해킹 혐의로 (외국)정부 관계자를 기소한 첫 사례”라며 “절취된 기업 비밀의 범위로 볼 때 이번 일은 중대하며 공세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계속되는 미·중 갈등
중국은 즉각 미국의 중국군 기소에 반발했다. 중국 국방부는 “중국 정부와 군은 인터넷으로 무역 기밀을 절취하는데 전혀 연루되지 않았다”면서 해킹을 전면 부인했다. 겅옌성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의 기소는 호도하는 행위이며 숨은 저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는 맥스 보커스 주중 미국 대사를 소환해 이 사안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중국 정부는 중국군 기소 며칠 뒤 정부 기관 컴퓨터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신 운용체계(OS) 윈도8 사용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윈도8 금지령에 대한 아무런 이유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기소에 대한 반발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도 중국에 맞불을 놓았다. 외신들은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미국 정부는 오는 8월 미국 라이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해킹·보안 콘퍼런스인 ‘데프콘’ 대회와 ‘블랙 햇’ 대회에 참가를 신청한 중국 해커들에게 입국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미 콜로라도에서 열리는 우주·인터넷 회의 참가를 신청한 중국인 10∼12명에게 입국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이 행사에는 제임스 클래퍼 미국국가정보국장 등 미국 정보·군사 고위관료들이 참석해 연설을 했다.
중국은 오히려 미국이 중국 정부와 기업을 해킹해왔다고 반박했다. 중국 국방부가 이달 초 미국이 중국 정부, 기업 등을 해킹한 증거를 갖고 있으며 곧 미국의 중국군 기소에 대한 조치를 담은 공식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 국방부는 미국이 사이버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 이번 사건을 조작했다고 비난했다. 겅옌성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은 사이버 안보를 강화하고 싶을 때 사이버 위협을 핑계로 댄다”며 “미국의 중국군 기소는 계획적이며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첨예해지는 미·중 사이버 냉전
미국이 직접적으로 중국을 해킹 주범으로 겨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지난해부터 간접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발언을 해왔다.
조지 리틀 미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해 “사이버 방어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외교·경제·군사를 포함한 범정부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군을 포함한 중국 관리들에게 사이버 공격에 대한 우려를 말해왔다”며 중국이 해킹을 주도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중국은 오히려 자신들이 사이버 범죄의 희생양이라고 반발했다. 2013년 미국인과 전 세계를 상대로 미국 국가안보국이 무차별 도·감청을 실시한 사실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을 인용하면서 미국의 주장이 위선적이라고 맞받아쳤다. 중국 정부는 최근 스노든의 폭로 내용을 근거로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이 미국의 해킹 대상에 포함됐다고 강조했다.
겅옌성 대변인은 “지난해 전직 CIA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미국의 중국 사이버 감시행위에 대해서 미국은 침묵하고 있다”며 “올바른 행동을 하지 못한 미국이 어떻게 다른 이를 비난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스노든 사태를 계기로 미·중간 사이버전이 외부로 표출됐다고 분석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사이버 전쟁을 하려면 첩보부터 해야 되기 때문에 이미 미국과 중국이 과거부터 첩보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스노든 사태 이후 외부로 알려졌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미국이 기소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중국 해킹에 대한 미국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