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스팀(Simstim). ‘매트릭스’와 ‘사이버스페이스’와 같은 용어를 고안한 윌리엄 깁슨의 1984년 사이버펑크 소설 ‘뉴로맨서’에 등장하는 감각 및 의식 전달 장치다. 이 장치를 이용하면 다른 사람의 감각 내용을 완벽하게 그대로 전달 받을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 케이스는 컴퓨터 시스템에 침입해 데이터를 빼오는 일로 먹고사는 이른바 ‘콘솔 카우보이’다. 현실 세계와 매트릭스의 세계를 넘나드는 이 일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돈벌이보다는 육체이탈이 주는 짜릿한 경험 때문에 그만두지 못한다.
뇌에 시한폭탄과 같은 독소 포자를 이식받은 케이스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해킹해 매트릭스라는 가상의 세계에 침투하면서, 그의 애인 몰리로 하여금 그 시스템이 설치돼 있는 건물에도 접근하도록 한다. 그는 몰리와 심스팀 장치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가상적 세계와 물리적 세계, 양자를 넘나든다.
심스팀 장치는 기본적으로 두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장치다. 이를 활용하면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의 귀로 들으며, 그의 피부로 촉각을 느끼고, 그의 코로 냄새를 맡는다. 다른 사람의 모든 감각 내용이 완벽하게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 되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감각 내용의 생중계다. 이런 점에서 심스팀이란 용어도 simulation과 stimulation의 앞 글자들을 결합해 만들어졌다.
이런 장치는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영화 ‘이상한 나날들(Strange Days)’에는 ‘와이어(Wire)’라는 장치가 나오는데, 이것은 단순히 감각 내용을 생중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저장한 후 재생해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장치는 오락은 물론이고 교육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장치는 장밋빛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기술은 항상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끔찍한 장면을 극단적으로 그려낸다. 한 여인을 강간하는 악당은 그녀에게 심스팀 장치를 씌우고 두 사람의 감각과 의식 내용이 서로 전달되게 한다. 그녀는 희생자로서의 경험은 물론이고 강간범의 감각과 의식까지도 생생하게 느끼며 죽어간다.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중적 위치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감각 경험이나 의식 내용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을까? 공자의 말씀대로 이른바 ‘이심전심(以心傳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가? 부처의 말씀대로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이 가능할까? 여기서 ‘문자’나 ‘교’는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미디어 또는 매개를 의미하는데, 의식 내용이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매개 없이 전달될 수 있을까?
현재 뇌과학은 대뇌피질의 패턴을 읽어내 이를 컴퓨터로 처리하는 ‘뇌파 컴퓨팅’을 개발하고자 한다. 몰입형 가상현실은 아니지만 미디어의 매개를 의식하지 않고 가상 세계를 투명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약한다.
최근 시제품이 판매되는 구글 글라스는 사진이나 비디오를 촬영한 후 이를 자신의 사이트에 전송하거나 SNS를 통해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만약 실시간 전송이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시각과 청각 정보를 그대로 전송받아 대리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는 머지않아 구현될 것이다. 남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소설 속의 와이어에 다름 아니다.
다른 사람의 감각 경험을 함께 하려는 사이버펑크적 욕망은 아직 초보적이지만 웨어러블 컴퓨팅 기술 속에서 공명하기 시작하고 있다. 나와 너는 어떻게 구별될 것인가?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