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손정의, 로봇의 미래를 찾다

[데스크라인]손정의, 로봇의 미래를 찾다

“세계 최초로 사람의 감정을 읽는 로봇이 탄생했습니다.”

“사장님, 너무 띄우지 마세요. 부담됩니다.”

이달 5일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기자 간담회에서 손정의 사장과 로봇 ‘페퍼(Pepper)’가 나눈 대화의 한 장면이다. 페퍼는 소프트뱅크가 선보인 로봇이다. 이 자리에서 페퍼는 손 사장은 물론이고 객석의 기자들과도 얘기를 주고받았다. 페퍼는 대화 상대의 말을 알아듣고 그에 맞는 대답을 내놨다. 페퍼는 스스로 배우는 기능이 있어 사람과 자주 대화할수록 더 똑똑해진다.

움직임도 매우 자연스러웠다. 특히 손과 팔, 어깨와 목으로 이어지는 동작은 물 흐르듯 이어졌다. 악수는 기본이고 아이돌 못지않은 웨이브까지 선보였다. 눈에 달려 있는 카메라로 사람의 표정을 파악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찾아보면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페퍼가 어떤 로봇과 견줘도 손색없는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손 사장이 내놓은 로봇의 뛰어난 기능에 사람들은 탄성을 보냈다. 하지만 손 사장의 남다른 감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페퍼에 숨어 있는 최고의 가치는 바로 ‘비즈니스 모델’이다. 손 사장은 로봇의 개념을 첨단 기술을 하나로 모은 ‘작품’에서 소비자가 쓸 만한 ‘상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지금까지 로봇은 얼마나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평가를 받았다. 혼다가 두 다리로 걷는 ‘아시모’를 개발했을 때 로봇 산업의 일대 전기라고 찬사를 받았다. 더 비싼 프로세서와 센서, 더 정교한 모터와 실린더가 들어갔다. 가격은 수억원을 웃돌았다. 로봇의 성능은 점점 좋아지는데 보통 사람에게 “도대체 저 비싼 로봇이 내 삶에 어떤 도움을 줄까”라는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손 사장은 그 해답을 스마트폰에서 찾았다. 우선 가격을 확 낮췄다. 페퍼는 다리가 아닌 바퀴로 이동한다. 데이터 처리는 서버에서 하고 페퍼는 인터넷으로 그 결과만 받는다. 부품 값이 적게 들었다. 가격은 제작비를 밑도는 200만원 안팎으로 맞췄다. 판매도 스마트폰처럼 할 전망이다. 약정 기간을 맺고 보조금을 주면서 월 이용료를 받는 방식이다. 앱 설치도 가능하다. 어떤 앱을 페퍼에 쓰느냐에 따라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음악 교사도 되고 손님, 안내원 역할도 해낸다.

페퍼 사업은 당장 적자를 면치 못하겠지만 결코 허황된 투자가 아니다. 판매가 늘어나면 월 이용료와 앱 아이템 판매로 이익 실현이 가능하다. 스마트폰과 앱 장터를 함께 가지면서 애플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됐다. 손 사장은 한 술 더 떠서 로봇과 앱 장터에 통신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생태계를 꿈꾼다. 페퍼가 대중적 인기를 끌지, 아니면 호사가의 사치품으로 전락할지 미지수지만 손 사장의 전략만큼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손 사장의 로봇 사업 청사진을 보면서 우리나라 통신 업계의 현실이 오버랩된다.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채 보조금 경쟁에 사활을 거는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지금 소프트뱅크 기업가치는 SK텔레콤의 6배에 가깝다. 5년 전만 해도 격차는 두 배 이하였다. 말로만 글로벌 경쟁력을 외치기보다 손정의의 페퍼처럼 혁신의 결과를 찾아야 한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