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3사, 1800억 출자전환 ‘팬택 살리기’ 나설까

재고물량 최다 70만대 처리비용 감안하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듯

이동통신 3사가 팬택 채권단의 출자전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약 5000억원에 이르는 재고 휴대폰 처리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동통신 3사가 가진 팬택 채권 1800억원 규모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이동통신 3사가 팬택 채권단의 출자전환 요구를 놓고 장고에 들어갔지만, 업계는 사실상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관측했다.

22일 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보유한 팬택 재고 휴대폰 물량은 최다 70만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개별 단말기 평균 출고가를 70만원으로, 팬택이 법정관리에 들어간다고 가정하면 이동통신 3사는 이들 단말기를 사실상 ‘마이너스 폰’으로 팔아야 할 처지다.

통신사 한 관계자는 “팬택이 청산으로 이어지는 법정관리로 들어간다면 소비자 선호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사후서비스(AS) 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유통구조에서는 사실상 마이너스 폰으로 팔아야 한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팬택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이동통신 3사는 산술적인 계산만으로도 49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채권 규모가 1800억원인데 출자전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배 이상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해 이동통신사로서는 현실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휴대폰 수급 구조가 삼성전자와 LG전자 두 곳으로 재편되는 것도 이통사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각각 제조사가 과점 구조로 고착화되면 현재 이통사가 쥔 휴대폰 수급의 주도권이 제조사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제조사도 팬택 청산에 부정적이다. 중국 등 후발 제조사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사 한 관계자는 “팬택이 없어지면 최근 제조 수준을 높인 중국 등 후발업체들 시장 진입문이 지금보다 넓어질 것”이라며 “남은 제조사들도 생태계 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관측에도 불구하고 이동통신 3사는 약 1800억원 규모 팬택 채권 출자전환을 놓고 쉽게 결론을 못 내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며 “전례가 없는 일인 만큼 부작용들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KT와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약 900억원 채권을 가진 1위 사업자 SK텔레콤의 결정에 따라가겠다는 뜻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출자전환은 이동통신 3사가 방향을 같이 할 수밖에 없다”며 “SK텔레콤이 가장 많은 채권을 가진 만큼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처리비용을 부담하더라도 팬택의 운명에 말려 들어가면 안 된다는 강경기조도 감지됐다. 이동통신사 한 임원은 “내부에서 이번에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팬택의 침몰에 말려 들어가면 안 된다는 강경론이 대두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동통신 3사는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지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설정한 팬택 워크아웃 지속 결정시한은 오는 7월 4일까지다.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4일까지 입장표명이 없으면 사실상 법정관리로 가는 것에 동의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