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명탐정 코난` 자처한 금감원

[기자수첩]`명탐정 코난` 자처한 금감원

20년 가까이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명탐정 코난’이다. 악인에 의해 초등학생 몸으로 작아진 고등학생 명탐정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내용이다. 코난은 사건을 접할 때마다 철저히 증거를 수집해 진실에 접근한다. 자신의 능력과 힘을 과시하지 않고, ‘유명한’이라는 탐정을 내세워 마치 그가 해결한 것처럼 순식간에 범인을 잡아낸다.

금융감독원이 오는 26일 200여명에 달하는 전·현직 금융사 임직원 징계를 예고했다. 대상에는 지주회장은 물론이고 전·현직 은행장 수십명이 포함됐다.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의 주전산시스템 교체, 고객정보 유출, 도쿄지점 비리 등 각종 사고가 연루돼 있다.

금감원은 초유의 징계를 앞두고 ‘명탐정 코난’을 자처했다. 과학적 수사로 사건 해결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눈치다. 그런데 200여명을 징계해야 할 금감원이 ‘객관적 증거’를 확보했는지, ‘연관성’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검사를 진행한 과정도 의뭉스럽기 짝이 없다.

KB금융의 주전산기 교체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해당 임원의 계좌추적 사실을 사전에 외부로 발설했다. 관련 계획이 언론에 먼저 보도됐다. ‘난 증거를 이렇게 수집할 거예요’라고 미리 알려주는 식이다.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에게는 사전 중징계 예고를 했다. ‘기승전결’이 없다. 그들이 왜 사건의 범인인지 근거를 대지 못한다. 조력자인 금융위원회조차 “개탄스럽다”고 한다.

잘못은 분명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바로잡는 데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를 바탕으로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그것이 명탐정의 본분이다. 200여명을 범인으로 지목했다면, 각자의 범죄 행위를 철저히 입증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수사로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둔갑하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난의 명대사 하나를 소개한다. “용기라는 단어는 사람을 분발하게 만드는 정의로운 말이다.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금감원의 기세등등한 조사가 부디 용기이길 바란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