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KB국민은행의 내부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국민은행 경영진과 사외이사의 불협화음은 자체 진화가 불가능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갈등이 지속될수록 한국IBM만이 득을 보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산기 교체 작업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국민은행은 현재의 시스템을 쓸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연장 사용료를 IBM측에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 따르면 한국IBM은 추가 연장 시 매달 89억원을 받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KB국민은행의 이번 사태 뒤에서 한국IBM이 미소 짓고 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한 꺼풀 더 벗겨보면 한국IBM이 웃고만 있을 수 있을지 의아하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이번 주전산기 교체 갈등의 도화선은 셜리 위 추이 한국IBM 대표가 이건호 KB국민은행장에게 보낸 메일이었다. 본지가 입수한 메일에 따르면 위 추이 대표는 당초 제안했던 금액보다 18% 낮은 1540억원을 제시했다. 그것도 주전산기 교체 기종을 최종 결정하는 날, 이 같은 카드를 던졌다.
한국IBM 대표가 어떻게 기종 결정 시점을 정확히 알고 메일을 보냈는지는 의아하지만 일단 논외로 치자. 결과론적으로 IBM으로서는 교체 작업을 중단시킨 절묘한 수였다. 그러나 국민은행 다음의, 제2·제3의 고객을 확보할 때도 순탄할 수 있을까.
KB국민은행 담당자들은 행장에게 직접 메일로 제안을 한 한국IBM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절차를 무시하고 도의도 저버리는 행동에 분노하는 모습이다. IBM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인식은 비단 국민은행 내부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에서도 읽힌다.
그래서 걱정이다. 한국IBM은 한때 국내 IT사관학교로 불렸다. 1967년에 국내 진출해 첨단 정보 기술과 서비스를 소개하고 수많은 CEO들을 배출했다. 그런 한국IBM이 이제는 분란의 중심에 있다. 장기적인 안목보다 당장의 실적 맞추기에 급급했던 누군가의 단견에서 이번 일이 시작된 것은 아닌지 강한 의문이 든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