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금융인 줄징계가 현실이 됐다. 200여명에 달하는 전현직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직원들이 그 대상이다. 최고 경영자의 징계 수위가 최대 관심사지만 징계 대상의 면면을 보면 그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어떤 규정을 적용받는 지 아직도 불투명하다.
징계를 앞둔 금융인들의 자괴감은 실로 엄청나다.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중죄를 지은 죄인 기분이 든다고 한다.
얼마 전 중징계 대상에 이름을 올린 임원 한분을 만났다. 징계 이유가 내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반대 입장을 피력한 게 핵심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소명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금융감독원이 200여명에 달하는 모든 이들의 소명을 수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과정을 생략할 경우, 사실 관계와 다르거나 형평성에 어긋나는 결정을 할 수 있다.
수많은 금융인들은 이번 결과에 따라 명예실추는 물론, 직장까지 잃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잘못된 사안은 일벌백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재심의위원회가 객관성과 독립성을 담보해야한다. 명확한 증거와 사실에 기반해 심의가 이뤄지고,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금감원은 ‘감독기관의 옥상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재심의위라는 조직까지 만들어 그 권한을 배가한 상황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면 역풍은 더 거셀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금융시장은 불황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금감원이 이번 결정에서 금융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고,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는 결론을 내오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금융권을 더 힘들게 만들 것이다. 금감원 무용론이 또 고개를 들 수도 있다.
9회말 2아웃에 어떤 공을 던져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금융호’를 살릴지는 금감원의 몫이다.
경제금융부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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