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좀..."영장 있으세요?"

앞으로 미국 경찰은 피의자의 스마트폰 등 각종 개인용 기기를 들여다 보려면 반드시 법원의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피의자는 경찰의 검문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영장 없이 확보된 휴대폰 내 각종 자료는 증거 효력을 잃게 된다.

이젠 수사기관도 영장없인 용의자의 스마트폰을 함부로 열어 볼 수 없게됐다. 한 관람객이 미 워싱톤DC에 있는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이젠 수사기관도 영장없인 용의자의 스마트폰을 함부로 열어 볼 수 없게됐다. 한 관람객이 미 워싱톤DC에 있는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25일(현지시각) 미 연방대법원은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이른바 ‘스마트폰 사생활권’을 만장 일치로 인정했다.

이날 발표된 판결문에 따르면 “현대인은 대부분의 민감한 개인정보와 각종 데이터를 스마트폰에 넣고 다닌다”며 “이는 법의 보호를 받아 마땅한 귀중한 사생활권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사건은 2년전 캘리포니아 검찰이 ‘갱단의 중요 활동 증거’라며 한 피의자의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에 저장된 동영상과 사진을 법원에 증거로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캘리포니아 항소법원이 이를 공식 채택하자, 피고측 변호인은 “영장없이 압수한 스마트폰내 자료는 증거 효력이 없다”고 맞섰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점에 나온 보스턴 법원의 판단은 이와 정반대였다. 경찰이 영장없이 한 용의자의 플립형 휴대폰을 조회해 그의 집에서 총기와 마약류 등을 찾아낸 것과 관련, 법원은 이를 법정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영장없이 이뤄진 불법 공권력 집행으로 본 것이다.

스마트폰에 비해 저장된 개인정보도 많지 않은 구형 휴대폰에 조차 법원의 개인정보보호 의지가 완강하자 보스턴 검찰은 이 사건을 상급심에 상고, 지난 4월부터 연방대법원의 심리가 진행돼 왔다.

이번 판결에 대해 보수단체들은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갈수록 첨단화돼가는 범죄의 속성상, 신속한 스마트폰 검열 없이는 범인 체포나 추가 범죄 예방이 불가하다는 논리다. FBI나 CIA 등 연방정부 역시 그동안 이같은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밝혀왔다.

하지만 인권보호단체인 전자프론티어재단(EFF)의 로텐버그 사무처장은 “현행 수정헌법 제4조에 의거, 영장 없는 압수수색은 기본적으로 불가하다”며 “한 해 미국에서만 1200만명이 체포되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이 없었다면 단순 잡범까지도 무차별적으로 스마트폰을 검색당하는 사태가 우려돼 왔다”고 말했다.

이날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우리의 이번 결정이 일선 수사기관이 범죄와 맞서는데 많은 어려움을 초래할 것임을 잘 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사생활은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지켜져야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현재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 각급 법원에 계류중인 개인정보 보호 관련 각종 소송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