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10조원대 장벽을 넘어

이재홍 교수
이재홍 교수

게임산업의 지난해 매출이 10조8800억원이라는 사실을 최근의 데이터를 통해 알게 됐다. 마(魔)의 장벽 같았던 10조원대의 매출이 달성됐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게임산업이 장하다는 생각 한편으로 안쓰럽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갖가지 규제 장애물을 뚫고 쌓아 올린 게임산업의 고통스러운 실적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게임산업 역사상 처음으로 매출 10조원대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게임산업이 8조6800억원의 연 매출을 올렸던 2005년을 전후로 한 시기였다. 그 당시 산업계는 곧 10조원대 시대가 열릴 것이란 꿈에 부풀어 있었으며, 나라 안팎에서 쏟아지는 대한민국 게임산업에 대한 찬사와 기대는 실로 대단했다. 아마 당시 성장속도가 변함없이 지속됐더라면 이내 10조원대에 진입했을 것이고 글로벌 위상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케이드게임 ‘바다이야기’의 사행성과 중독성이 부각되면서 정부는 사행성 우려가 있는 게임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규제하기에 급급했다. 그 여파로 게임산업의 10조원 시대 진입은 기약 없이 늦춰졌고 고공행진을 하던 게임산업 날개도 꺾이고 말았다.

바로 그때부터 게임에 대한 규제 강도는 거세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되는 것은 정부가 도박에 관한 게임의 본질을 제대로 따져 명확하게 ‘도박’과 ‘게임’을 구분해 놓지 못한 점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애매하게 모든 게임에 적용한 사행성 문제와 규제가 지금처럼 게임산업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바다이야기’의 망령은 2007년 게임산업 매출액을 급기야 5조1400억원까지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결국 게임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여성가족부, 교육부, 국회까지 나서 게임산업에 대한 진흥은 온데간데없고 규제만이 압도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청소년보호법의 일환으로 내려진 강제적 셧다운제와 게임시간 선택제가 시행되더니 게임 매출의 1%를 징수하자는 법안까지 발의되고 게임을 중독물질로 지정하는 4대 중독법이 발의되기에 이르렀다.

게임을 건전하게 즐기는 이용자의 권리는 소리 없이 제한됐고 기업과 게임시장은 지속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이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 달성한 10조원대의 실적이기에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게임산업의 10조원대 매출 달성에 대부분 시큰둥하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과 같은 실적이라는 의미는 아닐까. 그만큼 대한민국의 게임시장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온라인게임 강국이라는 용어는 전설 속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제1차 규제개혁 점검회의 석상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야 한다고 강조한 발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놀이하는 인류’ ‘게임하는 인류’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일은 게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탁상 정책에서 비롯됐다. 문화콘텐츠산업 수출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게임이 지닌 잠재력이나 산업적 가치는 국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창조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다뤄져야 한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규제의 쇠사슬이 옥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산업의 올해 매출액은 작년 대비 11.2% 증가한 12조1000억원 정도까지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단언컨대 정부가 게임산업을 문화예술산업으로 재정립해 유럽이나 미국, 일본이나 중국처럼 지원을 확대하고 진흥 정책을 펴나간다면 게임산업은 문화융성시대의 초석이자 엔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재홍 한국게임학회장·숭실대 교수 munsarang@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