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최양희 미래부, ETRI부터 챙겨라

[신화수 칼럼]최양희 미래부, ETRI부터 챙겨라

별 탈 없이 문턱을 넘었다. 논란거리가 제법 많았지만 김명수, 정성근 등 다른 장관 후보자들의 흠이 워낙 큰 덕분이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후보자가 지난주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했다. 이르면 이번 주 임명장을 받는다. 미래부 2기 출범이다.

첫 출범 당시 기대와 달리 창조경제 주무부처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미래부다. 사실상 기획재정부를 지원하는 부처 모양새다. 새 미래부 장관이 제 위상을 되찾을까. 쉽지 않다. 가뜩이나 힘이 센 기재부인데 정권 실세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까지 왔다. 새 미래부 장관이 뜻밖으로 ‘독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청와대도 돕지 않는 한 큰 변화는 없다.

장관이 할 수 있는 게 엄청 많아 보여도 실제로 한두 개 밖에 없다. 2년만 넘어도 ‘장수’인 짧은 임기에 새로 시작해 성과까지 낼 게 없다. 민간 출신이라면 업무, 관료 속성까지 과외수업을 받아야 한다. 뭔가 해보려 할 때 바뀐다. 누가 맡아도 조급해지는 자리이니 판만 늘어놓는 ‘양떼기’ 유혹에 넘어간다. 결과가 나올 때쯤 자리에 없으니 책임질 일도 없다. 처음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한’ 정책이 이토록 많은 이유다.

기술과 창의에 기반을 두고 미래 경제를 일구겠다고 만든 미래부다. 할 일이 너무 많다. 다 할 수도 없고, 하려 해서도 안 된다. 그만한 예산과 조직이 아니며 부처 협력도 없기 때문이다. 이 마당에 새 수장이 판만 잔뜩 벌리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안 봐도 비디오’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잘 할 수 있으며, 장관과 대통령이 바뀌어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일 하나만 확실히 챙기는 게 바람직하다.” 노준형 전 정통부 장관의 조언이다.

최 신임 장관은 창조경제 주체인 민간을 위해 각종 규제 철폐, 지원 의지를 밝혔다. 융합 신산업도 제시했다. 옳은 방향이다. 그런데 없앨 규제는 미래부보다 다른 부처에 훨씬 많다. 민간 기업도, 융합도 정부 도움 없이 잘 돌아간다. 미래부만이, 새 장관만이 잘 할 일은 아니다.

그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출신이다. 교환기부터 차세대 이동통신까지 맨땅에서 시작해 ‘정보통신기술(ICT)코리아’를 만든 산실이다. 기업도 ETRI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신산업을 만들었다. 이 ETRI가 어느 순간 그저 그런 곳이 됐다. 열정도 잃었다. 오후 여섯시 즈음 퇴근길 차량으로 북적이는 연구소 앞, 하나둘씩 꺼지는 연구실 불빛이 말해준다. 공무원 같은 연구원 일상은 무기력해진 ICT코리아와도 무척 닮았다.

주무장관 다섯 명을, 또 두 명 연속 배출했다고 되살아날 자부심, 열정이 아니다. ETRI를 창조경제 산실로 삼아 물적, 인적 자원을 쏟아붓고 관심을 보여야만 가능하다. 원장을 역임한 최문기 장관에게 이를 기대했건만 ‘에트의리’를 너무 의식했는지 하지 않았다.

창조경제 기반이 ICT와 과학기술이라면 미래부는 ETRI와 기초과학연구원(IBS)이라는 좋은 실행주체를 뒀다. 두 곳에 기대고, 고민을 털어놓는 기업, 대학 연구원이 많아지면 창조경제 싹이 저절로 튼다. 그런데 ETRI는 어느덧 산업계에서 잊힌 존재가 됐다. IBS 원장은 서울대 총장 해보겠다며 중도에 그만뒀다. 몇 개월째 공석이다. 국가 최고 기초·응용기술 연구소가 이 지경인데 이를 바로잡지 않고 미래부가 어떻게 창조경제를 구현할지 의문이다. 속는 셈 치고 새 장관에게 또 한 번 기대를 걸 따름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