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R코리아의 박 모 대표가 ‘원격화상투약기’를 구상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약사였기 때문이다. 심야시간이나 공휴일 등에는 약국의 접근성이 떨어지는데 이를 해소할 방법이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IT에서 가능성을 엿봤다. 약국이 문을 닫더라도 약사가 복용을 지도할 수 있고, 소비자에게 적합한 의약품을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취약 시간대의 공백을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시행착오 끝에 ‘원격화상투약기’가 탄생됐다. 이 기기는 일종의 ‘원격 약국’이다. 소비자가 찾아오면 이 기기를 이용해 약사와 원격으로 영상 상담이 이뤄진다. 약사는 이후 기기를 제어, 투약기 내 비치된 약품 중 적합한 약을 골라 판매하는 과정을 거친다. 약국이 문을 닫아도 약사와 상담이 가능하고 필요 약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약국이 안고 있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한 것이 특징이다.
원격화상투약기의 등장은 화제를 일으켰다. 영상 상담과 원격 의약품 판매에 따른 안전성 문제가 제기됐지만 그와 동시에 취약 시간대의 불편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대를 모았다. 효과를 알아보자며 도입에 적극적인 약국도 등장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시도는 현실의 벽에 가로 막혀 빛도 보지 못할 상황에 놓여 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라는 평가에도 보건복지부는 약사와 소비자가 ‘화상’이 아닌 ‘직접 대면’해야 한다며 설치 불가라는 입장이다.
이 원격화상투약기 사례를 자세히 소개한 건 기술 발전과 규제의 문제를 곱씹어 보기 위해서다. 기술 발전은 속도가 빨라 규제와 충돌하는 일이 잦다. 그런데 두 가치가 충돌했을 때 합리적 해결 방법과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는 논의가 진행돼야 하는데 현실은 규제 자체에 매몰돼 재단되는 경우가 많아 걱정이다.
“시도 자체를 막으면서 어떻게 융합과 창조 경제를 얘기하는지 모르겠다”는 중소기업가의 토로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