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상한 검
7
미사흔은 검에게 다가갔다. 황금검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검은 손에 쉬이 잡히지 않았다. 검은 돌덩이가 되어 있었다. 미사흔은 의아했다.
“엇.”
그런데 돌아다니던 암기가 불현듯 그 힘을 잃고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암기를 보낸 자들의 심기가 흐트러졌구나. 저건 고구려의 암기다. 그것은 형님 복호를 따르는 자들일 수 있다는 뜻. 복호도 이 황금검을 안단 말인가?”
미사흔은 결코 평화롭지 못했다.
“왕 눌지가 알고 있다면 형님 복호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에첼은 빠르게 옷을 걸치며 말했다.
“복호는 나와 다르다. 나는 느닷없다.”
“왕자님, 세상의 제왕들은 모두 느닷없이 출몰했습니다.”
미사흔은 에첼의 시선을 애써 피했다. 에첼도 애써 서둘렀다.
“빨리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왕자님.”
미사흔의 낯빛은 불안을 극복하려 하고 있었다.
“내가 그를 안다. 그는 끝까지 나를 쫒을 것이다.”
에첼은 갑작스런 절망을 쫒으며 쳐다보았다.
“이 황금검은 방만한 살인을 하지 않는구나.”
에첼이 불현듯 무릎을 꿇었다.
“이 황금검은 그 주인을 찾아 새로운 제국을 건설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검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검이 아닙니다.”
미사흔은 다시 검을 잡고싶었다. 잡아보았다. 가뿐히 잡혔다.
“이 검은 운명의 검이 맞다.”
미사흔이 검을 황금의 제국처럼 늠름히 세웠다. 검은 능라를 스스로 훌훌 벗어던졌다. 이번에는 아름다운 여인네의 나신으로 나타났다.
“이 검의 주인은 원래 실라인이었습니다.”
“실라인?”
아틸라는 블레다의 손목을 더욱 높이 쏘아올렸다. 아틸라의 목에서도 피가 가늘게 분출했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콘스탄티우스가 활을 갖췄다. 오에스테스는 짧은 창을 눕혀들었다. 에데코는 작은 단도 셋을 손에서 빙빙 돌렸다. 여차하면 블레다에게 날아갈 무기였다. 그때 아틸라는 활시위처럼 팽팽한 채찍을 맨손으로 단박에 끊어냈다. 그의 손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끊어진 채찍은 튕겨나가며 엉뚱한 훈의 전사 얼굴로 날아갔다. 전사는 곧바로 즉사했다. 채찍이 얼굴에 독하게 박혀버렸다. 블레다의 입에서 역한 도살자의 토악질이 넘어왔다.
“그 황금검을 내놓아라. 그 검의 주인은 바로 나다. 내가 가장 큰 세상의 제왕이 될 것이다. 너는 네 부족을 데리고 떠나라.”
블레다의 얼굴은 능선이 일그러지며 장차 무너질 자신의 모습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었다.
“황금검을!”
블레다는 벌렁 뒤로 자빠지면서도 무차별 탐욕을 멈추지 않았다. 블레다의 벌어진 사지는 겁탈당하기 직전의 여인네 꼴과 다를게 없었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몸집에 비해 볼품없는 물건이 덜렁거렸다.
“적은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겁니다. 이거.”
아틸라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머리통을 툭툭 쳤다.
“넌 적통이 아니야.”
블레다는 생애 마지막 외침처럼 발버둥쳤다.
“적통이 따로 있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적통이 있습니까? 적통이란 우리 부족을 우리 훈족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자만이 적통입니다. 스스로 권력을 일으켜서 적통이라고 억지 주장한다면 개나 소나 적통이 되겠군요.”
그러자 전사들의 낄낄거리는 비웃음은 주인 만난 말의 꼬리처럼 획획거렸다.
“적통만 주장하시고 전장에서 친히 싸움을 하지 않으시니 이미 루가 왕이 그 옛날 제압했던 트라키아인들이 또다시 들고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 시간에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에 가 있어야 할 시간입니다. 제왕님.”
아틸라는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여인의 몸뚱이가 아니라 더 이상 못참겠군. 역겨워서. 하하하.”
아틸라의 영악한 웃음소리에 블레다는 아직도 흥분을 참지 못하고 남은 채찍을 아틸라의 얼굴로 획 던졌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