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과연 돛 달수 있을까?

[데스크라인]과연 돛 달수 있을까?

‘한시(漢詩) 정치’를 즐기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얼마 전 우리나라 국빈방문 때 의미심장한 명제를 던졌다.

바로 순풍에 돛을 달자는 뜻인 ‘풍호정양범(風好正揚帆)’이다. 당나라 때 한 시인이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노래한 서정적 표현에서 한중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앞으로도 오래 그리고 안정적으로 지속돼야 함을 외교식으로 바꿔 시적으로 표현했다.

시 주석은 알고 있었을까. 우리나라 천재적 음악가 현제명이 민족의 나아갈 바를 힘차고 밝게 노래한 가곡 ‘희망의 나라로’가 아직도 우리 국민들 사이에 애창되고, 그 곡 클라이맥스가 ‘돛을 달아라/부는 바람 맞아/물결 넘어/앞에 나가자/’로 돼 있다는 사실을 시 주석이 알았다면 그는 정말 탁월한 정치언어 마술사임이 분명하다.

순풍에 돛만 달면야 파도가 좀 높아도, 갈 길이 멀어도 쉽고 빠르게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중국과 함께 국제정치라는 비정한 망망대해를 순탄하게 해쳐나갈 수 있는 한 방편이란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국가적 관계를 좀 좁혀 양국 산업에서도 이 같은 관계설정이 가능할까.

생산과 소비에만 만족할 것 같았던 중국은 이제 기술과 혁신의 경쟁자로 확실히 부상했다. 잠재적 추격자인 줄로 여겼던 중국이 어느새 일부 기술에선 우리를 앞질렀고, 우리가 앞서 있던 기술격차 시간은 급격히 줄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산업계에서 돛에 안긴 순풍이 아니라 무서운 폭풍우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가 돛을 올릴 새도 없이 배까지 풍비박산낼 힘을 가진 게 바로 중국이다.

이번 1박 2일의 짧은 국빈방문 기간 중 시진핑 주석은 이재용(JY) 삼성전자 부회장과 모두 네 번 만났다. 시 주석 국빈방한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은 아예 삼성가의 안방 격인 신라호텔에서 열었다.

JY가 시진핑과 쌓은 ‘관시’가 쉽게 틀어지지 않을 정도로 두텁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래서 삼성의 향후 중국 사업이나 내수시장 공략이 돛 달린 형국이 될 것이라 기대할 법하다. 지난 2005년 첫 만남 당시 저장성 당서기였던 시진핑은 지금 중국 최대 권력자에 올랐고, JY도 삼성 후계 대권을 눈앞에 뒀다. 다음번 중국이 될지, 한국이 될지, 아니면 제3국이 될지 모르지만 두 사람 모두 권력과 경영의 최정점에서 만나게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중국은 삼성 성장의 도약대에서 아킬레스건으로 전락한 스마트폰에서 샤오미 같은 칼날을 감추고 있다. 중국으로선 최첨단 반도체 기술이 필요한 반도체 공장의 유치도 결국은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사례를 만들어내겠다는 건 아닐까. 어찌됐든 미래 성장성이 떨어지는 장치산업의 대명사인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에서도 중국은 거대 자본력과 노동력을 앞세워 삼성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시 주석이 지금 JY를 예우하고, 협력을 논하며 만나는 것은 이건희 회장의 삼성 성장사를 존경하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중국의 이해득실을 끊임없이 계산하고 있다.

JY호 삼성의 미래가 안 보이면 그는 삼성의 돛대를 꺾어버릴지도 모른다. 돛을 다는 것은 사람(삼성)이 하지만, 돛을 불어줄지 찢어버릴지는 결국 바람(중국)이 결정한다. JY는 그 바람을 극복해야 한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