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가 뒷이야기]대기업에 맞서 이길 수 있을까요

○…공원에서 일하는 A씨

모바일기기용 부품 업체 직원 A씨는 요새 해뜨기 전에 집을 나섭니다. 초등학생 아들과 아내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서입니다. 남들은 휴가 일정 짜느라 바쁘지만 A씨의 머릿속은 사직서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급박하게 실적이 악화된 회사가 인력 감축을 결정, A씨도 권고 사직 대상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고객사 요청대로 부품을 개발하고 설비 투자까지 마쳤지만 정작 고객사는 다른 업체에 더 많은 물량을 주문했습니다. 당초 계획대로 납품하지 못하자 회사 실적이 나빠진 것이죠. 분기마다 한 번씩 하던 단가 인하가 월 단위로 바뀐 것도 회사에는 악재였습니다. A씨는 오늘도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스마트폰으로 구인공고 사이트를 살펴봅니다.

○…대기업에 맞서 이길 수 있을까요

중소 팹리스 업체의 B사장은 최근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에 진정서를 냈습니다. 자사가 개발한 특허 기술이 모 대기업에 무단으로 쓰여 유무형의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입니다. 당초 B사장은 소송을 제기해 법정에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지만 주위 사람 모두가 말리는 바람에 국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지인들이 하나 같이 “대기업과 소송전을 벌여 이기는 중소기업 없다” “천신만고 끝에 승소하더라도 그 사이 회사는 만신창이가 된다”며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B사장의 주장대로 해당 대기업이 특허 기술을 무단으로 도용했는지는 확인하기 힘들지만 신문고를 울려야 하는 현실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샘플 제출 납기일이 하루?

중소 소재부품 업체의 C사장은 최근 삼성전자로부터 샘플을 가져와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글로벌 대기업에 납품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잠시, 삼성전자는 샘플 테스트용으로 1만개나 요구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테스트가 진행되면서 무려 5만여개를 공급해야 했습니다. 샘플 비용만 2억원이 넘었다네요. 개발 단계 샘플은 모두 무상으로 제공하는 게 우리 업계 관례죠. C사장을 더욱 당혹스럽게 한 것은 납기입니다. 샘플을 요청한 다음날이 바로 납기일이랍니다. 삼성의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면 기회는 다른 업체로 날아가죠. 이 회사는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어 납기를 맞추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C사장은 추가 비용을 들여 국내 외주 업체를 통해 납기를 맞췄다고 합니다. 삼성전자가 향후 일정 수준의 양산 물량을 보장해준다고는 하는데, 요즘 같은 불황기에도 약속을 지킬지 불안하네요.

○…주주님의 방문

코스닥에 상장된 반도체 기업의 D사장은 얼마 전 개인투자자 대표와 면담을 해야 했습니다. 회사 실적이 지난해에 이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불안감을 느낀 개인투자자들이 한 명을 대표로 내세워 사장과 면담을 시도한 것이죠. 이 자리에서 투자자는 D사장에게 회사가 더 나빠지기 전에 구조조정을 실시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한 마디로 인력을 줄여 비용 절감에 나서라는 뜻이죠. 면담을 마친 후 D사장의 마음은 착잡했습니다. 실적이 나빠지면 인건비라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최고경영자가 모를 리 없죠. 하지만 회사 여건이 좋지 않다고 함께 고생한 직원을 내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3분기 실적 전망도 부정적인 상황, D사장의 고민은 나날이 커져갑니다.

매주 금요일, ‘소재부품가 뒷이야기’를 통해 소재부품가 인사들의 현황부터 화제가 되는 사건의 배경까지 속속들이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