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IBM이 향후 5년 동안 반도체 연구개발(R&D)에만 3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히자 우리 정부가 국내 산업 보호차원에서 대응 전략 수립에 나섰다. IBM은 한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시스템반도체와 차세대 소자 R&D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라 국내 업계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래창조과학부와 산하 연구기관 등은 주력 산업인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강화를 위해 연구 전략 새판 짜기에 돌입했다.
IBM의 대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 발표가 자극제가 됐다. IBM의 움직임은 악화일로에 있는 자사 하드웨어 사업의 마지막 돌파구를 찾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목할 점은 연구자금 대부분이 실리콘이 아닌 다른 소자로 만든 칩 메인 프레임을 구동하는 특수 반도체 개발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이다. 컴퓨터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대체 소자 개발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그간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연구 분야다.
한국 반도체산업은 세계 메모리 시장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취약하다. 게다가 최근 수출에서 차지하는 반도체 비중이 매년 줄어들고 있고, 장비 국산화도 더디게 진행되면서 업계 안팎으로 성장 정체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 국책연구기관 담당자는 “IBM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경쟁자이자 ‘자극제’ 역할을 한다”며 “IBM의 이번 투자는 우리 정부가 국내 반도체 연구 사업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미래부는 반도체 산업을 다시 한 번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한 새로운 연구전략 마련에 돌입했다. 대규모 연구 예산 투입이 쉽지 않은 만큼 산업부와 일부 사업을 공조하거나 내년부터 미래부가 추진하는 ‘창의소재 디스커버리 사업’과 연계하는 방안 등 여러 가지를 검토 중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외국기업 투자 계획에 대응해 국내 반도체 산업의 연구정책을 뒤흔든다는 게 마땅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부처 간 공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타 부처의 연구 지원책을 재탕하는 사업이 생겨날 것이란 우려도 크다.
업계 관계자는 “한때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했던 일본이 미래를 준비하지 못해 추락했듯이, 우리나라도 경쟁 업체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면서도 “단기간에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연구 방향을 바꾸는 것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연구 사업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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