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우선주의에 국내 인터넷 산업 멍든다

성인인증 강화를 두고 업계가 부처와 각을 세우는 것은 사용자 편의 저하와 이에 따른 서비스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국내법을 따르지 않는 해외 서비스에 안방을 내줄 수 있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당장 성인 콘텐츠를 이용하려는 사용자가 겪는 불편이 크다. 성인인증 강화로 다음 달 21일부터 음원 서비스 이용자는 하루에 최소 한 번 청소년 유해매체물, 일명 ‘19금 콘텐츠’ 접근 시 본인이 19세 이상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담은 플레이리스트를 듣다 영국 유명 밴드 ‘퀸’의 ‘돈 스톱 미 나우(Don’t stop me now)’같이 국내에서 19금 판정을 받은 곡 재생 순서가 되면 음악이 끊기고 성인인증 팝업이 뜬다. 개인정보를 넣고 휴대폰으로 확인 문자를 받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성인임을 입증하면 비소로 다시 음악이 흐른다. 이 과정을 매일 반복해야 한다. 웹툰도 영화도 마찬가지다.

불편함은 결국 사용자 이탈을 부른다. 모바일 시대 사용자 편의성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간편하게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모바일 시대 사용자 패턴이다. 사용자는 복잡한 성인인증을 거쳐 콘텐츠를 즐길 만큼 시간적 여유도 의지도 없고 자연스럽게 이용이 간편한 서비스를 찾아 이동한다.

모든 서비스가 동일한 규제에 놓여 대안이 없다면 사용자가 참고 기존 서비스를 쓰겠지만 가까운 곳에 유튜브 같은 훌륭한 대안이 있다. 지금은 음원과 웹툰에서 국내 서비스가 강세를 보이지만 사용자 편의성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해외 서비스가 진출하면 언제든 사용자를 뺏길 수 있다. 인터넷 실명제에 국내 동영상 서비스가 발목 잡힌 사이 유튜브가 국내 시장을 싹쓸이 하는 것을 목격한 업계는 규제로 인한 역차별 트라우마가 있다. 성인인증 강화로 똑같은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터무니없지 않다.

일각에선 모든 것을 규제로만 풀려는 ‘규제 우선주의’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규제로 아무리 높은 장벽을 쌓아도 실효성은 의문이다. 청소년 상당수가 부모 명의로 휴대전화에 가입돼 있어 매번 인증에도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규제가 국내 인터넷 산업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규제를 강화해도 완벽할 수는 없다”며 “유튜브 등 해외 서비스로 우회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국내 서비스만을 대상으로 한 인증 강화는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정 부분 규제가 필요하지만 적정선과 형평성이 필요하다”며 “결과적으로 해외 기업을 돕고 국내 서비스를 죽이는 규제는 산업 발전을 위해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가부가 규제 대신 ‘건강한 가정 육성’이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권현영 광운대 과학기술법학과 교수는 “매일 성인인증을 한다고 아이들이 바뀌는 것도, 건강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며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부정적인 정책보다는 청소년 교육과 가정 내 부모 권한 강화 등 근본적 문제 해결을 돕는 긍정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청소년 유해매체물 관련 여가부-업계 입장 요약>


청소년 유해매체물 관련 여가부-업계 입장 요약


정진욱기자 jjwinw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