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로 좁혀지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국산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모바일·IT기기 등 소형 전지 시장에 이어 올해 전기자동차·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중대형 분야에서도 정상 탈환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4년 연속 소형전지 시장 1위를 지키며 일본·중국과 격차를 더욱 벌리는 가운데 국산 배터리 경쟁력은 날로 높아가고 있다.
◇소형전지 시장 독주체제
소형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중국의 시장 점유율 격차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기존의 탄탄한 공급선에다 원통형 소형 전지 등 신규 시장 선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일본시장조사업체 B3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국산 소형 이차전지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42.9%에서 올해 약 2% 증가한 44.4%로 전망됐다. 일본은 지난해 27%에서 25.7%로 1.3%포인트 감소하고 중국 역시 지난해와 비교해 0.3%포인트 떨어진 24.3%로 예상했다.
국산 소형 이차전지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포화에도 전동 공구 등 신규 시장 공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일본 파나소닉은 미국 테슬라모터스 전기차에 원통형 배터리 공급이 늘고 있지만 스마트폰·노트북 등 IT분야 공급 물량이 줄고 있다. 1990년 세계 최초로 전지 시장을 개척했던 소니 역시 단독 배터리 사업을 결정했지만 추가 투자 여력이 부족해 PC용 원통형 배터리 사업 비중이 점점 줄고 있다. 중국 배터리 업계도 내수 제품 위주의 공급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
삼성SDI는 2010년 산요를 제치고 4년 연속 세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시장 점유율은 25.8%로 전년(25%)대비 0.3%포인트 늘었다. 특히 7억3000만셀을 출하해 2위에 오른 파나소닉(16.6%)과 격차도 더 크게 벌렸다. 뒤를 이어 LG화학이 2위 자리를 넘보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7억1500만셀을 출하하며 시장점유율 16.3%를 기록했다. LG화학 역시 2위 파나소닉과의 점유율 격차를 0.3%포인트까지 좁히며 2위 탈환을 코앞에 두고 있다.
시장 점유율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전지시장에서 사장될 것으로 예상했던 원통형 전지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니켈카드뮴 배터리를 주로 쓰던 전동공구는 물론이고 납축전지를 사용해온 전기자전거에 원통형 전지 채택이 크게 늘고 있다. 이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의 고밀도 원통형 전지 기술과 생산 경쟁력을 확보한 국내 업계의 시장 선점은 당연한 결과로 풀이된다.
B3는 올해 소형 배터리 생산량이 46억2000만셀로 지난해보다 5%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삼성SDI는 지난해보다 13% 증가한 12억8000만셀, LG화학은 12% 증가한 8억셀을 생산해 각각 1·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2위 파나소닉은 테슬라에 공급하는 원통형 배터리 물량에 힘입어 전기차용 소형 배터리 물량이 일부 늘었지만, 스마트폰·태블릿PC 등 소형전지 경쟁력이 떨어져 올해 3%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모바일·IT기기 시장 포화로 주춤했던 소형 전지시장이 전동공구·전기자전거 등 신규 분야에 발 빠른 대응으로 선두권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연구개발(R&D) 투자를 바탕으로 신규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배터리 시장을 주도할 중·대형 분야까지 선점
소형 배터리에 이어 전기자동차·에너지저장장치(ESS)로 분류되는 중대형 이차전지 시장에도 국산 배터리가 선두자리에 오를 전망이다. 일본 업체가 주도했던 초기 전기차 시장에 올해 처음으로 국산 제품의 선두권 탈환이 확실시 되고 있다. B3에 따르면 LG화학과 삼성SDI 위주의 한국이 올해 전기차용 리튬이온 이차전지 시장에서 49.5% 점유율로 일본 기업(48.9%)을 제치고 선두를 차지할 것으로 관측했다. 지난해 국산 배터리 점유율은 41.3%로 일본 점유율 51.1%에서 9.8%의 격차를 반전시킨 셈이다.
LG화학의 시장 선전과 함께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다소 주춤했던 삼성SDI의 성장이 유력시되기 때문이다. 전기차 시장 초기에는 일본 닛산 ‘리프’ 등의 독주로 독점 공급선인 AESC(닛산·NEC 합작사)가 시장을 주도했지만 전기차 모델이 다양화되면서 시장 구도는 점차 바뀌고 있다.
이에 올해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LG화학이 용량 기준 1688MWh를 판매해 점유율 30%, 삼성SDI가 1062MWh를 판매해 점유율 19%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AESC가 1592MWh(28.6%)로 2위를, 테슬라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는 파나소닉이 804MWh(14.4%)로 4위를 차지할 전망이다.
일본업체에 비해 다양한 전기차 모델에 공급권을 확보한 한국기업의 시장 선점이 유력하다는 평가다. LG화학과 삼성SDI가 확보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모델만 50개가 넘는다. 일본과 중국 배터리 업체의 전기차 공급권을 전부 합쳐도 국내 기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LG화학은 GM·르노·현대기아차·포드·볼보 등을 포함해 확보한 전기차 모델만 40개에 달한다. 삼성SDI 역시 BMW·마힌드라·크라이슬러 등 2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ESS용 배터리 시장도 국산 제품이 주도하고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에 비해 공급물량은 일정하지 않지만 글로벌 ESS시장이 대형화, 다양화되면서 생산 경쟁력과 기술 대응에 뛰어난 국산 제품의 시장 선점이 유리하다는 게 업계 공통된 시각이다.
올해 글로벌 ESS·무정전전원장치(UPS) 시장에서 국산 배터리가 절반을 차지할 전망이다. B3는 보고서에서 LG화학과 삼성SDI의 올해 ESS·UPS용 배터리 시장점유율을 각각 22%, 20%로 전망했다. 2010년(28㎿h)과 비교하면 4년 만에 25배가량 성장했다. 글로벌 ESS 시장은 올해 690㎿h 규모로 이 중 290㎿h가 국산 리튬이온 이차전지로 채워질 전망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ESS가 전력 수요관리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전력 주파수조정(FR)용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는 가운데 국산 제품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실적을 보유하며 기술과 생산 경쟁력을 인정받는 상태”라며 “ESS에 최적화된 고안전성, 장수명 배터리 개발 등 R&D 투자를 통해 선두권 자리를 지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