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광다이오드(LED) 칩만 생산하다간 쪽박 차기 십상입니다.”
“국내 업체들은 ‘중국발 공습’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왔습니다. 일주일 사이로 LED 시장이 뒤집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LED 업계에 중국발 적신호가 켜졌다. 중국산 초저가 LED 칩·패키지 제품의 공급 과잉으로 과열 경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 추락세가 예사롭지 않다. 올 하반기부터 미국 등지에서 백열등 판매 금지가 확대되면서 세계 조명 시장에서 LED 교체 바람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가격 경쟁이 지난 2분기 크게 심화된 것이다. LED 가격이 하루가 다르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가격 하락은 LED 조명 대중화를 위해 선결돼야 할 숙제다. 하지만 문제는 시장 개화 속도에 비해 가격 폭락세가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다. 초기 LED 가격이 다소 높게 형성된 측면도 있지만 최근엔 제조 원가도 남기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실제 올해 상반기 국내 주요 LED 업체들의 실적을 봐도 출하량은 늘었지만 매출은 크게 줄어들었다. 업계는 출혈 경쟁이 장기화될 경우 중국에 ‘백기투항’할 국내 업체도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LED 가격, 날개없는 추락
최근 LED 칩·패키지 가격 하락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조명용 LED 칩의 경우 지난해 말 100원 밑으로 떨어지더니 올해부턴 매 분기 10원씩 떨어지고 있다. 특히 LED 조명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180㏐/W급 미들파워 5630(5.6×3㎜ 크기) LED 패키지의 경우 작년 초 개당 150원대 이상을 유지하다 올해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지난 1분기 70원대, 근래 들어서는 60원대로 추락했다.
패키지 가격이 떨어지면서 칩 가격도 동반 하락했다. 4020(4×2㎜ 크기) 칩의 경우 대다수 업체들의 제품 가격이 평균 30~50원대에서 최근 20원대로 낮아졌다. 중국 사난(Sanan)의 LED 칩은 심지어 10원대 밑으로 떨어졌다. 사난의 저출력 2310(23×1㎜ 크기) LED 칩은 심지어 개당 5~6원에 이르기도 한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지난 2010년 평균 50달러 수준이던 LED 조명 가격이 오는 2020년에야 5달러 정도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실제 조명 가격 추락세는 더 빨랐다. 이미 지난 2012년 13달러로 급락한 뒤 내년엔 절반 수준인 6달러로 떨어질 전망이다.
시장 격변기를 틈 타 중국 LED 기업들이 국내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의 대표 기업 엠엘에스(MLS)는 최근 국내 기업인 ‘옵토레즈(optoleds)’라는 총판을 통해 조명 제품 판매를 시작했다. 이 회사는 중국 기업으로는 처음 지난해 세계 LED 시장에서 10위권에 진입했다. LED 패키지 생산량으로는 이미 세계 1위에 등극했다. 그만큼 저가로 물량을 밀어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월 생산량이 134억여개에 달했고 올해는 200억개까지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업체 뿐 아니라 세계 1위인 일본 니치아까지 초긴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LED 전구를 1달러에 출시한 바 있다.
요즘 국내 업계가 이들 중국 업체들에 더욱 위기감을 갖는 데는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품질’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출력 LED 조명 분야에서 중국 시장내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킹선도 지난해 말 국내에 진출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이 가격 외에 품질 측면에서도 우리를 빠르게 쫓아오고 있다”며 “브랜드 가치가 높거나 완제품 관련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업계, 실적 기대 이하로 ‘뚝’
올해 국내 업체들의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지난 2분기 서울반도체는 매출액 2485억원, 영업이익 130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이는 당초 예상했던 실적의 절반 수준이다. 부진했던 가장 큰 요인은 TV 백라이트유닛(BLU)용 LED 매출액이 크게 감소한 동시에 LED 조명 가격이 떨어진 것이다. 그동안 성장을 이끌었던 조명용 LED 매출이 전 분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 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삼성전자의 LED 사업은 올 상반기 적자폭이 더 커졌다. 지난 1분기 200억원 수준의 영업손실이 2분기에는 배로 늘어나면서 상반기에만 700억원 수준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역시 출하량이 줄진 않았지만 LED 가격이 추락하면서 매출이 정체했고, 영업이익은 크게 떨어졌다. 동부LED도 작년 영업손실만 38억원에 달했고, 올 상반기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기업들 가운데는 LG이노텍만 상대적으로 선방한 편이다. LED 일반 조명의 매출 비중이 35%로 확대됐고, 이달 처음 흑자 전환도 예상된다.
LED 장비 업계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급 과잉에 따른 영향으로 LED 업체들의 설비투자 규모가 위축된 탓이다. 특히 LED 칩 핵심 생산 장비인 유기금속화학증착기(MOCVD) 가격이 최근 4인치 웨이퍼 기준 대당 10억원 안팎으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불과 3~4년 전만 하더라도 30억원에 달했다. 이에 따라 엑시트론·비코 등 주요 MOCVD 업체들도 국내 시장에서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수익성이 악화되자 최근 LED 업체들은 사업 재정비에 나서거나 신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금호전기는 지난해 계열사 더리즈와 함께 LED 에피·칩 생산 설비 일체를 일진LED에 현물출자 방식으로 넘기면서 자체 생산을 포기했다. 이 회사는 최근 신규 사업으로 터치스크린패널(TSP) 시장에 뛰어들었다.
일부 업체는 중국 업체와의 동침도 불사하고 있다. 서울반도체는 중국 사난과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 이르면 오는 10월부터 합작회사를 통해 사난의 저출력 LED 칩을 공급받게 된다. LED 칩을 자체 생산하지 않은 루멘스, 포스코LED 등도 중국 업체와의 협력을 고심하고 있다.
◇생존 전략 마련 절실…고부가가치 시장에 집중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들이 중국발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고출력 LED 칩을 기반으로 한 특수 시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출력 LED 칩의 경우 최근 자동차, 야구장, 골프장 등에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고출력 제품은 저출력 보급형 제품 대비 높은 기술력을 요구할 뿐 아니라 부가가치가 높다. 특히 최근 스마트폰, 태블릿PC, 디지털카메라 등의 카메라가 점점 고성능화하면서 고화질의 사진 촬영 환경을 지원하는 LED 플래시 시장도 고수익 신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후 서비스를 강화해 차별화를 꾀할 수도 있다. 아직까지 산업용 조명 시장에서는 중국 제품에 대한 신뢰성 부족으로 글로벌 제품이 더 선호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LED 조명의 보증 기간은 5년 정도다. 하지만 중국 업체나 이들 제품을 유통하는 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설립 1~2년도 되지 않은 신생 업체다. 체계적인 서비스 지원을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다.
이 밖에 주요 자재를 내재화하고 공정 단계를 단순화하는 등 생산 경쟁력을 갖추는 것도 필수다. LG이노텍·일진그룹 등은 수직 계열화를 통해 고품질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LG이노텍은 사파이어 웨이퍼 가공부터 LED 칩·패키지·모듈 등에 이르기까지 내재화해 생산성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일진그룹도 최근 원재료인 사파이어 잉곳·웨이퍼에서 칩·패키지, 조명까지 전 공정에 걸쳐 수직 계열화를 이뤘다.
업계 전문가는 “국내 업체들이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분야로 주력 사업을 전환해 중국 업체와 기술 경쟁력 격차를 벌려야 한다”며 “이와 함께 범국가 차원에서도 LED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