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립스는 눈길을 끄는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액센츄어와 공동으로 기획한 이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사물인터넷 등 첨단 기술을 이용해 몸이 불편한 루게릭병 환자를 돕는 것이다. 필립스와 액센츄어는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만 하는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잃어버린 힘’을 되찾아 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해 뇌파를 측정하고 이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 환자가 스스로가 TV나 조명을 켜고 끌 수 있게 만들고, 비상 상황이나 의료 지원이 필요할 때 적시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인텔도 얼마전 눈길을 끄는 사업을 발표했다. 인텔은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빅데이터 등 IT 기술을 통해 파킨슨병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질병의 진행 상황을 측정하고 모아진 데이터를 분석해 치료 약 개발 등을 촉진하겠다는 게 골자다. 인텔은 이 연구를 위해 미국 내 유명 파킨슨병 연구재단과 손을 잡았다.
의료와 ICT 융합이 화두다. 기술 발전으로 일반인의 건강상태나 환자의 증상 등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보다 나은 의료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하기 위한 시도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다. 컴퓨터 두뇌(CPU)를 만드는 인텔이 파킨슨병을 연구하는 게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게 상황이다.
그러나 국내를 돌아보면 불편한 마음이다. 걱정도 앞선다. 미국·유럽 등은 의료·ICT 융합의 미래 가능성에 주목해 뛰어들고 있지만 우리는 시도조차 가로막기 때문이다. 모호한 기준과 규제, 반대를 위한 반대 등이 그나마 남아 있는 창의력을 갉아 먹고 좌절하게 만드는 현실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합의한 원격의료 시범사업조차 아직 첫 발을 떼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계에 인재들이 모여있고, ICT 기술과 인프라 수준이 높다는데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언제까지 이 융합 추세를 바라만 볼 것인가. 변화 속에서의 제자리걸음은 결국 후퇴로 남을 뿐이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