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하이텍 해외 매각설 솔솔…팹리스는 `비상`, 정부는 `뒷짐`

동부하이텍 매각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해외 업체의 인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동부하이텍 의존도가 높은 국내 중소 팹리스(반도체설계전문업체)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반면에 정부는 뚜렷한 대안이 없어 관망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해외 매각을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리는데다 사회적 관심도 낮아 또 하나의 국내 제조기업이 이렇다 할 대책 없이 해외로 넘어갈 판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동부하이텍 인수 희망자들이 지난주부터 순차적으로 현장 실사를 진행 중이다. 실사에는 국내외 투자펀드 한앤컴퍼니·애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베인캐피털과 중국, 인도 파운드리기업 SMIC와 HSMC가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르면 9월 말 인수자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업계는 해외로 매각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소문만 무성했던 세계 파운드리 5위 업체 중국 SMIC가 참여하면서 과거 하이닉스 LCD사업과 오리온전기 등에 이어 또 한 번 중국에 한국 첨단 기업이 인수되는 시나리오도 예상된다.

해외 업체로 인수될 가능성이 제기되자 국내 중소 팹리스 업계는 기술 유출과 파운드리-팹리스 생태계 와해를 우려하고 있다. 복합전압소자(BCDMOS) 등 동부하이텍의 공정 기술은 물론이고 국내 팹리스의 시스템반도체 설계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팹리스업체 대표는 “과거 대만 파운드리 업체 UMC도 자회사에 고객 정보를 빼준다는 소문이 돌아 팹리스들이 발길을 끊었다”며 “유사한 일이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업체 대표는 “정부가 동부하이텍 부채를 탕감한 후 출자 전환을 통한 설비 투자로 자생력을 확보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하루빨리 동부하이텍을 안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팹리스 업계의 한숨은 커지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움직임은 없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앞서 수차례에 걸쳐 업계 의견을 수렴했지만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동부하이텍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되지 않아 기술 수출을 막을 근거가 없는데다 동부그룹 정상화라는 경제적 관점의 매각 추진을 중단시킬 명분이 부족한 탓이다.

사회적 관심이 낮은 것도 정부의 개입이나 업계의 공동 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 과거 하이닉스나 최근 팬택의 경영 위기 사태와 달리 한국 제조업 발전을 위해 동부하이텍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 자체가 조성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세계 최대 메모리반도체의 호실적에 묻혀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동부하이텍 해외 매각 여부를 넘어 고질적인 취약점으로 꼽히는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본 논리에 따라 기업을 쪼개고 기술만 빼내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정화 산업부 전자부품과장은 “현실적인 개입 수단은 없지만 동부하이텍 매각 작업을 주시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국내 반도체 산업의 체질을 높여나가는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