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암살의 시작
2.
찌르렁찌르렁. 신녀의 요령이 아틸라의 정신을 흔들었다. 아틸라는 신녀와 마주앉아 있었다. 신령스러운 여자였지만 장님이었다.
신녀는 소 뼈와 소 내장으로 점을 치고 있었다. 신녀의 눈은 검은 눈동자가 없었다. 그녀의 눈은 흰자위만 가득했다. 흰자위가 삐그덕거리는 두 눈으로 소 내장과 소 뼈를 뻑뻑히 겁박하듯 보았다. 조용히 읊조렸다. 오래 전부터 감추어둔 신의 비밀을 발설하려는 자의 경건함이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제왕님을 죽이려는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말하라.”
아틸라는 동요하지 않았다. 죽음과 죽음의 예고가 한 두 개 였던가?
“제왕님의 제국은 제왕님의 죽음과 함께 요동을 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하라.”
아틸라는 역시 동요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초조했다. 자신의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숨소리를 최대한 낮추었다.
“나의 위대한 제국은 영원해야 한다.”
“그러나, 셋째 아드님이 위대한 제국을 살릴 것입니다.”
“에르낙?”
아틸라는 아아아, 소리치고 싶었다. 말 달리고 싶었다.
“에르낙이 제왕님의 위대한 제국을 영속시킬 것입니다.”
아틸라는 일어섰다. 그의 커다란 마음은 흡족한 표정이었다.
“제왕님. 살기(殺氣)가 제왕님 주변에 가득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신녀와 무서운 예언에 아랑곳없이 아틸라는 기쁨이 솟구쳐오르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자신의 몸 안에서 솟구쳐오르고 있었다. 전혀 다른, 전혀 새로운, 역사를 쇄신하는 태양이었다.
“난 두렵지 않다.”
“그러나 아직 검이 오지 않았습니다.”
신녀의 경건함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틸라는 다시 앉았다.
“검은 다시 출발했다.”
"검은 불순해졌습니다.“
아틸라는 말이 없었다. 숨소리도 없었다.
“위험에 처한 검이 떠났을 뿐입니다.”
아틸라는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살기를 베러가야겠다.”
신녀도 일어났다. 그녀의 키는 아틸라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그 여자가 제왕님을 무리하게 흔들었습니다. 그 여자 때문에 제왕님의 제국은 더욱 커질 것이며 그 여자 때문에 제왕님은 위험에 처하기도 할 것입니다.”
아틸라는 말없이 나갔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아틸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로마의 흔적을 지상에서 지워버리겠다. 나의 위대한 제국은 신라까지 당도할 것이다.“
에데코와 바길라스는 동로마제국의 황궁에 도착했다. 황궁은 화려하고 장대했다. 보이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에데코는 비잔티움 문명의 절정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을 정도였다. 그것은 고상함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크리사피우스는 에데코의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크리사피우스는 자만에 가득찬 표정이었다. 야만인을 대하는 오만한 건방이었다. 에데코는 서둘러 말했다.
“아틸라 제왕님께서는 황궁으로 직접 오시지 않을 것입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직접 와서 알현하라고 하십니다.”
크리사피우스는 금새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누이 풀케리아와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딸 에우독시아를 모함해 동로마 황궁을 떠나게 하고도 살아남은 영악한 환관 아니던가?
“에데코. 당신은 스기리족의 왕이었소. 어떻게 아틸라같은 사람의 부하가 되었소?”
에데코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에데코 역시 외교적이었다.
“나는 한 때는 왕이었습니다. 우리 종족은 아틸라 제왕님에게 복속되었죠. 아틸라 제왕님은 나에게 걸맞는 왕의 지위를 그대로 허락했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크리사피우스의 이해득실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왜 그랬소?”
“당신이 아틸라와 생활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난 단지 그의 부하가 아닙니다. 우리는 피의 맹세를 나눈 형제나 다름없습니다. 또 아틸라 제왕님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운 적이 없습니다. 아틸라 제왕님은 우리와 똑같이 생활하십니다. 우리와 똑같이 먹고 잡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앞장 서서 나가 싸우시죠. 당신의 황제와 다릅니다.”
에데코는 아틸라를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했다.
“부럽소. 그런 주인을 두었다니. 당신의 충성심도 놀랍소.”
크리사피우스는 에데코의 눈동자를 통과하는 부와 명예에 대한 무수한 욕망을 보았다. 그의 온 몸은 아직도 황궁의 아름다움을 쫒고 있었다.
“훈의 관습을 버리고 로마의 관습을 따르기로 약속한다면 당신을 황금으로 만든 지붕의 대저택에서 부와 사치를 누리며 살게 해 줄 수 있소.”
크리사피우스는 그저 관습을 버리라고만 했다. 그저 관습을 따르라고만 했다.
“주인의 허락을 받지않고 그렇게 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습니다.”
에데코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이런 유혹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삶을 바꿀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이기도 했다.
“항상 아틸라 측근에서 수행하시오?”
“그렇습니다.”
에데코는 비로소 크리사피우스의 진정한 집요함이 느껴졌다.
“아틸라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시오?”
“아틸라는 자의 주인이자 가장 절친한 친구입니다.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가장 최측근 몇몇이 아틸라를 목숨을 걸고 경호합니다. 아틸라는 아무도 해할 수 없습니다. 또 그는 신이 보호하고 있습니다.”
크리사피우스는 바길라스에게 이상한 눈짓을 했다
미사흔은 황금검을 손에 쥔 채 복호를 따르고 있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