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현실화된 위기를 대하는 법

[기자수첩]현실화된 위기를 대하는 법

지난 1일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지난 2분기 상장사 실적은 충격적이다. 재무제표 기준 코스닥 등록 IT부품업체 전체 영업이익이 4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9.86%나 줄었다. 영업이익 4억원은 웬만한 벤처기업의 한해 영업이익에도 못 미친다.

이런 상황이 갑작스러운 건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스마트폰 부품업체를 중심으로 위기론이 확산됐다. 올 들어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 축소에 관한 전망도 나왔다. 우울한 전망이 빗겨가길 바랐지만 위기론은 이제 현실이 됐다. 모르고 당한 일이 아니라 희망적인 얘기를 하는 게 민망할 정도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긍정적인 면을 보고 싶다. 우선 특정 기업 쏠림 현상이 완화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점이다. 지난 2분기 IT부품업체들의 실적 부진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원칙을 실감하게 했다. 그동안 거래선 다변화가 힘들었던 부품업체들이 이젠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고객 유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당장 힘들어도 거래선 다변화를 이뤄낸다면 특정기업에만 의존하는 ‘천수답식’ 낡은 경영에서도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대기업 대신 해외 시장을 개척하면서 사업을 영위한 강소기업들은 지금도 여전히 호실적을 유지하는 곳이 많다.

또 하나는 스마트폰 이외 다른 시장을 볼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웨어러블, 헬스케어 등 사물인터넷(IoT)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국내 업체가 뚜렷하게 없었다. 기술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마트폰에 대응하느라 다른 제품을 개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인프라 역시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225㎒ 이동통신망을 서비스하고 기가인터넷 투자를 시작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세계 1·2위 메모리 업체가 국내에 있고, 기술을 갖춘 인재들도 여전하다.

과거에도 물론 위기는 있었다. 그런데 위기를 기회로 삼은 모범사례도 많다. 이미 현실화된 위기라면 회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이를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