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어느 한적한 오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무인정찰기 드론 한 대가 날아온다. 드론은 이내 신호탄 하나를 발사하곤 사라진다. 곧바로 그 지점에 F-16 전투기의 맹폭이 이뤄진다. 이 잠깐의 공습으로 8세 어린이 1명과 10대 청소년 2명 등 총 25명이 죽거나 다쳤다. 드론에 사람이 앉아 있었어도 아이들이 뛰노는 게 뻔히 보이는 곳에 신호탄을 쏴댈 수 있었을까.
구글이 프로그램하고 메르세데스가 만든 전기 세단 ‘이스마트’. 자율주행모드로 운전 중 차 앞으로 뛰어든 개를 인지한 순간, 이 차의 알고리즘은 숨 가쁘게 돌아간다. 브레이크를 밟을 경우 개가 생존할 확률 53%, 차가 파손될 확률 18%, 탑승자 부상 확률 4%. 찰라의 순간, 이스마트의 선택은 무엇일까.
디지털 시대 변화상에 대한 탁월한 분석으로 ‘디지털 사상가’라 불리는 니콜라스 카의 신작 ‘유리감옥’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해 정답 보다는 ‘혜안’을 제시한다.
전작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구글같은 검색 엔진이 어떻게 인간의 집중력과 사고 능력을 떨어뜨리는지 조명한 그는, 이번 신작에선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통해 가속화되는 디지털화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천착했다.
전작이 검색 엔진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문화의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었다면, 이 책은 인터넷과 인공지능, 웨어러블 디바이스, 빅데이터 등을 통해 점점 가속화되는 ‘자동화’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지, 또 우리 사회를 얼마나 위험에 빠뜨릴지 우려한다.
저자는 자동화 기술이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알고리즘화할 수 있는 절차적 과정은 컴퓨터가 대신 수행할 수 있지만, 암묵적 지식은 그럴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것을 컴퓨터에 맡기면 오히려 세상은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게 니콜라스의 경고다.
이 책에서 사례로 든 ‘구글 무인자동차’는 암묵적 지식마저도 컴퓨터가 학습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컴퓨터가 인간을 대체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아마존 킨들로 동화책을 읽고, 아이패드로 스케치를 배운 아이들은 연필과 종이가 만나 일으키는 손끝의 질감과 특유의 사각거림을 온 몸으로 느낄 기회를 박탈당한다. 결국 죽을 때까지 못 고칠 이들의 악필은 정갈한 손글씨 편지가 주는 즐거움을 원천봉쇄해 버린다.
자동화를 통해 얻는 혜택과 비용 절감은 쉽게 계산 가능하다. 인건비 감소나 생산성 향상, 작업 처리시간 단축, 이윤 극대화는 금방 수치화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는 계량적 측정이 어렵다. 컴퓨터는 우리가 업무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고, 그만큼 성취감도 줄어든다. 직장 동료와의 관계 역시 틀어진다. 여기에 대해선 어떠한 측정 평가도 없다.
하지만 저자는 컴퓨터 사회를 거부하고 자동화 문명의 파괴를 주장하는 ‘러다이트 운동가’는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문명이 어떻게 인간의 경험을 확대하고, 인간적 가치를 증대시킬 지 모두가 함께 고민해보자는 따뜻한 제언을 내놓는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테크놀로지의 범람 속에서 균형 잡힌 삶을 살기 위해서는 ‘행복은 누름버튼으로 재생되는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니콜라스 카 지음. 이진원 옮김. 한국경제신문 펴냄. 1만6000원.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