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교육부가 공청회에서 내보인 국가 교육과정이 방향을 잃고 바람에 표류하고 있다. 역대 교육과정 문서가 모두 ‘인간상’으로 시작할 만큼 이는 모든 교육과정이 우선시하는 ‘목표’다. 그런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은 그 다음이다.
그런데 현 개정안은 목표도 방향도 없이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 조정’ 때문에 흔들린다. 교육부가 현재까지 공개한 자료에는 인간상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지난 1월부터 내세운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융합형 인재’가 전부다. ‘기초소양을 갖춘 인재’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실체가 없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개정안의 방향은 ‘기초소양을 바탕으로, 꿈과 끼를 키워주는 맞춤형 선택학습’인데, 요구하는 기초소양은 너무 부족하고, 지향하는 맞춤학습은 학교현장에서 실현이 불가능하다.
고등학교 수업의 양은 대학의 ‘학점’에 해당하는 ‘단위’로 표현한다. 하버드는 문·이과 구분 없이 지원자 전체에게 영어, 수학, 과학 각각 30단위, 역사 6단위를 요구한다. 교육부는 국·영·수·사·과에서 각 10단위 수강만, 수능에서는 8단위 평가만 요구한다.
입시에 목을 맨 학교는 수능 8단위 내용만 무한 반복할 가능성이 크고 우리 아이들의 ‘기초소양’은 여기까지다. 선택학습은 교육과정이 아니라 학교현장이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다. 과목별로 교실을 모두 갖추고 원하는 학생이 많든 적든 모두 받아줘야 학생의 선택권이 비로소 생긴다. 이런 시설·인력·예산이 없는 고등학교에서 ‘맞춤형’은 공염불이다.
교육부는 10여명의 교육학자만 데리고 개정안 마련 공청회에서 몇 개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선택하라고 제시한 필수이수단위 10과 12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선택을 위해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교육부가 이제까지 ‘이해관계 조정’만 강조한 것으로 보아 그 조정의 결과로 보이지만 혹자는 이를 ‘밥그릇 싸움’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는 버려두고 단위 배정만 정하자는 것을 보고 과학계는 ‘인재상과 교육의 방향 설정이 우선이며 이를 위해 교육계만이 아닌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해 왔다.
교육부는 공청회에서 ‘교육과정개정자문위원회’를 내세웠지만 지난 8월 말에 와서야 ‘다양한 분야의 요구를 반영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며 이 위원회를 급조했지만 그도 3분의 2 이상이 또 다시 교육계 인사다.
학생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기초소양을 갖추고 나라에 필요한 인재상을 구현하도록 육성하는 것이 교육부의 ‘의무’다. 이 의무를 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자의적으로 결정해도 된다는 ‘권리’라 오해하면 안 된다.
의무를 이행하려면 앞으로 국가경쟁력을 이끌 많은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소수의 교육학자에게만 나라의 미래를 맡겨둬도 안 되고, 어른들의 이해관계 조정이 학생의 미래를 좌우하게 놔둬도 안 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스럽다.
정진수 기초과학학회협의체 교육과정대책위원회(충북대 물리학과 교수) chung@chungb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