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IT강국 대한민국, 핀테크 요람을 만들자

[이슈분석] IT강국 대한민국, 핀테크 요람을 만들자

구글은 송금 의뢰자와 수탁자를 직접 연결하 위해 뱅킹시스템 대신 ‘인터넷 플랫폼’을 구축했다. 돈이 오가는 통로를 IT플랫폼으로 구현해 송금수수료와 시간을 대폭 단축했다. 아마존은 은행계좌와 신용카드에 IT를 접목한 결제 방식을 선보였다. 이른바 간편 지급결제 서비스다. 중국 알리바바는 온라인으로 자산관리를 시작했다. 고객에 최적화된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며 시중은행을 압박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금융사가 아닌데 금융업에 진출하고, 자금과 담보가 아닌 IT를 전면에 내세워 기존 금융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고 있다는 점이다.

‘핀테크’는 파이낸셜(financial)과 기술(technique)의 합성어로 모바일 결제, 송금, 개인자산관리, 크라우드 펀딩 등 금융 서비스와 관련된 기술을 의미한다.

핀테크 기업은 전통적 금융영역의 파괴자다. 전통 금융사도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단순히 경계만 하는 게 아니라 부문에 따라서 경쟁과 협력이 엇갈리는 복잡한 구조다. 금융을 둘러싼 새 합종연횡이 시작됐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IT강국을 자부하는 대한민국은 아직 핀테크의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다. IT로 금융사업에 진출하려는 PG사나 솔루션 기업쯤으로 생각한다.

한국 금융시장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핀테크로 불리는 새로운 기술 융합, 혹은 기술 우위의 핀테크 기업을 인수, 합병하는 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핀테크 기업을 별도로 분류할 수 있는 기준도 없고 미국, 영국 등이 시행하는 정부 차원의 양성 프로그램도 전무하다.

정부와 금융, 벤처로 이어지는 새로운 핀테크 생태계 전환이 절실하다. 기술금융, IP금융 등 창조경제 엔진으로 불리는 또 다른 영역에서 핀테크의 명확한 정의와 육성방안이 재편성돼야 한다.

◇SNS+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핀테크 공습’ 시작됐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은 여전하다. 경제산업 각 분야에 금융위기 상흔이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은행권은 그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많은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성장세를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20% 이상 추락한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여기에 급격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고객의 디지털 취향을 감안하면 이제 은행 오프라인 지점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본적인 체질변화가 필요하다. 액센츄어 분석에 따르면 2020년, 오프라인 방식을 고수하는 은행의 시장점유율은 35% 넘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이 시장은 누가 차지할까. 바로 핀테크를 보유한 민첩한 디지털 전용 은행, 혹은 IT기업일 것이다.

새로운 경쟁자들은 전통적인 금융업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넘어오는 때가 많다. 은행 사업 경험이 없고 자본력도 떨어지는 사업자들이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기존 은행권과 경쟁이 가능한 구조가 됐다.

통신이나 대금 지불(payments) 사업자 등과 연계한 융합 사업(convergence)을 진행하는 과정에 새로운 사업 분야가 생겨나고 여기서 새로운 경쟁자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은행과 고객의 양방향,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고객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도 전통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핀테크는 한때 유행처럼 지나갈 흐름이 아니다. 앞으로 금융권이 접해야 할 숙명이다. 이를 어떻게 융합하고, 성장 텃밭을 만드는지가 앞으로 생존의 관건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전통 금융사의 중장기적인 경제 전망은 암울하다. 은행 간 인수합병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2020년까지 북미 지역 은행의 15~25%에 해당하는 7000여개 은행이 인수합병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금융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 IT 융합이다. 금융산업 각 분야에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스며들면서 사업 전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다가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디지털 뱅킹’이 필수가 된 셈이다. 액센츄어 조사에서도 은행의 투자 대상 1순위로 온라인 뱅킹(43%)이나 모바일 뱅킹(20%)을 꼽은 고객이 많았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하는 소셜미디어는 은행 산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카카오의 금융사업 진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투자할 은행이나 은행 상품을 고를 때 전문가의 조언 대신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사람들의 평가를 보고 결정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이러한 디지털 트렌드는 기존 은행들에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디지털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처지고 실패할 수 있지만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경쟁자들을 제치고 앞서나가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핀테크 요람 구축...민관 공동 ‘새 판짜기’ 시급

영국과 중국정부는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IT업체의 금융업 진출을 적극 허용하고 있다. 신기술이 접목된 보다 편리하고 쉬운 금융거래방식을 찾기 위해 정부가 움직이고 있다.

핀테크 기업의 성장은 기존 금융권에 상반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외 송금서비스,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 기업의 등장은 은행과 카드사 수수료 수입 감소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며, 송금서비스 부문에서는 오히려 기존 금융사에 새로운 수익채널로 활용할 여지가 많다.

이는 유망 핀테크 기업 인수나 기술 제휴, 기술투자를 통한 혁신을 모색하지 않는 금융사는 더 이상 생존이 힘들다는 얘기다. 현재 은행 산업은 전통적인 정규 시중은행(full-service bank)과 채권보증회사, 중소지방은행 등으로 나뉘어 있다. 미래에도 이런 유형의 은행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겠지만 새로운 형태의 금융 플레이어가 등장해 경쟁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환경에서 시장을 잃지 않으려면 디지털 전략을 기반으로 유연성을 갖춰나가야 한다. 기존 은행이 향후 금융 산업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면 구글이나 애플, 아마존 같은 새로운 디지털 경쟁자들과 손잡고 새로운 환경과 사업 모델에 적응해야만 한다.

기존 은행이 변신에 성공한다 해도 새로운 형태의 은행들이 등장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형태가 △틈새 디지털 공급자(niche digital provider) △디지털 시중 은행(Digital full-service bank) △큰 상자 은행(big box bank) 등이다. 먼저 틈새 디지털 공급자는 극도로 특화된 제품을 공급하는 민첩한 은행을 뜻한다. 디지털 시중은행은 기존 시중은행에서 이뤄지는 모든 서비스를 디지털상으로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을 말한다. 그만큼 은행의 모든 서비스가 온라인과 모바일 상에서 문제없이 이뤄지도록 디지털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는 것은 필수다. 기존 은행이 변신을 함으로써 디지털 은행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새로운 사업자가 나타나 디지털 은행 사업의 주도권을 쥘 수도 있다. 누가 먼저 적절한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는지가 관건이다.

정부 또한 핀테크의 통로를 막는 규제부터 걷어내야 한다. 이들 신생사업자의 진입을 저해하는 전자금융법과 여신금융업법 손질도 필요하다. 아울러 인터넷전용 은행 설립 등을 통해 전통금융과 핀테크 간 접점 기회를 더욱 넓혀야 한다. 또 기술금융과 IP금융 확산과 함께 핀테크 펀딩 등을 통해 민관이 공동 투자에 나서되 해외 공조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난 6월 액센츄어는 아시아 금융기관과 ‘아태 핀테크 이노베이션 랩(FinTech Innovation Lab Asia-Pacific)’을 선보였다.

빅데이터 분석, 모바일 분석, 지불 수단, 위험 관리, 보안, 준수 및 소셜미디어 및 협업 기술 분야에서 금융서비스의 미래의 판도를 바꾸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이라면 이 랩을 활용해 해외 선진 금융기관과 접점을 찾을 수 있다.

국내 핀테크 기업도 정부는 앞으로 이 같은 교류 프로그램을 확대해 선진 핀테크 역량을 배우고, 보다 효율성이 강화된 육성방안을 만들어야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 목소리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