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엔지니어링 산업이 경기침체로 인한 시장 규모 감소와 영세화, 불합리한 발주 관행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글로벌화는 물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고급 두뇌산업으로 도약이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사회간접자본(SOC) 포화와 건설경기 침체 속에 국내 엔지니어링 산업의 경영환경 악화가 심화되고 있다.
국내 엔지니어링 기업의 수주 규모는 지난 2011년 9조7686억원에서 지난해 6조6401억원으로 2년 사이 30% 이상 급감했다. 최근 5년간 연 평균 성장률은 -7.7%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세계 엔지니어링 시장이 같은 기간 연 평균 6.5% 성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내 엔지니어링 시장은 올해도 크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장 규모가 줄어드니 물량난과 수주난이 심해지고, 자연스레 기존 중소 엔지니어링 업체들은 영세한 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국엔지니어링협회가 1858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곳 중 9곳은 지난해 수주액이 50억원에 못 미쳤다. 연간 수주액이 1억원이 채 안 되는 곳도 20%에 달했다.
엔지니어링은 플랜트·SOC 프로젝트 가치사슬의 전방에 위치한 것으로 단순 생산이 아닌 기획·설계 능력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이다. 프로젝트 전체의 부가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영역이다. 정부도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난해 엔지니어링을 임베디드SW·시스템반도체·디자인 등과 함께 창조경제 시대 고급 두뇌산업으로 꼽으며 산업 육성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업계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중소기업 대부분이 눈앞의 작은 프로젝트를 확보하는데 급급하다 보니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 역량 강화와 글로벌화를 꾀하기 어렵다. 지난해 세계 엔지니어링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그쳤다. 미국과 유럽권 엔지니어링 기업이 세계 시장의 90% 가까이 점유하며 사실상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국내 엔지니어링 산업 부진에는 공공기관의 불공정한 발주 관행과 규제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 엔지니어링 사업대가는 예산 편성과 발주·입찰 과정을 거치면서 정부 고시 대비 70~80% 수준으로 떨어진다.
프로젝트 기간 중 계약 변경 사항이 발생해도 발주청이 예산 문제를 이유로 증액요인을 정산하지 않는 관행도 여전하다. 공기가 지연되도 실제 사업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후지원과 인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엔지니어링 산업 특성상 영역이 넓다보니 정부 부처 간 중복 규제가 적용되거나 어떤 때는 반대로 어느 부처도 관심을 갖지 않는 정책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엔지니어링 기업이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경쟁력을 높여나갈 엄두를 못내고 있다”며 “고급 두뇌산업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엔지니어링 : 과학기술과 지식을 응용해 기획·설계·분석·시험·감리·검사·자문·유지보수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엔지니어링 산업은 이들 활동으로 경제 또는 사회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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