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부터 발전용 유연탄에 개별 소비세가 부과됐지만 전력 도매 시장의 가격 약세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국제 유가 및 유연탄 가격 하락과 전력 공급 능력 확대로 추가 과세 충격이 흡수되는 모양새다.
28일 관계 기관 및 업계에 따르면 유연탄 개별 소비세가 부과된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전력기준가격(SMP) 평균은 ㎾h당 134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49원)에 비해 15원 낮아졌다. 유연탄 과세도 올해 초부터 이어진 전력 가격 하락 곡선을 반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달 들어서도 역시 전력 가격 약세가 계속되고 있어 당분간은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전력 가격은 피크 시간대에도 ㎾h당 140원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피크 시간대 최고 200원을 돌파하던 것과는 크게 상반된 모습이다.
이는 당초 업계의 예상을 벗어난 현상이다. 정부가 발전 연료 가격 균형을 맞추고자 유연탄에 개별 소비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을 세웠을 때만 해도 발전 업계는 연료 단가 상승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을 우려했다. 정부 역시 이를 이용해 발전원 간 가격 불균형을 해소하고 장기적으로 전기요금 현실화를 도모한다는 구상이었다. 현재 톤당 7만원대 초반 선에서 거래되는 유연탄에는 1만5000원에서 1만7000원의 개별 소비세가 부과되고 있다.
하지만 신규 발전소 건설로 전력 공급 능력이 늘어나고 여기에 국제 유가와 유연탄 가격 하락까지 겹치면서 과세로 인한 인상 요인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연내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는 정책적 의지를 내비쳤지만 의지 여부를 떠나 시장에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전력 업계는 당분간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연탄 과세는 시장이 충격을 흡수하고 있고 같은 시기에 시행된 송변전 주변 지역 지원법(송주법)도 그 인상 요인은 아직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내년 시행되는 배출권 거래제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부 관계자는 “유연탄 개별 소비세 부과와 송주법 시행 자체는 충분한 가격 인상 요인이지만 그만큼 공급 능력 확대, 유가 하락, 환율 등 인하 요인도 발생하고 있다”며 “현재 전력 기준 가격에 따른 전기 요금 변동은 별도로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와 올해 전력기준가격 및 예비율 비교
자료: 전력시장 운영정보 취합
장기 계약 앞두고 낮은 전력가격 변수
계속되는 전력 가격 하락에 발전 업계의 심기가 불편하다. 그나마 매출 감소에도 유연탄 가격이 하락하면서 손익에 타격은 크지 않았지만 앞으로 예정된 변수가 많다는 점에 가격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대 변수는 내년 도입 예정인 장기계약거래(정부승인차액계약제도)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발전사들은 한국전력과 일정 기간 동안 공급해야 하는 전력량과 가격을 정해놓고 거래하게 된다. 초기 협상 가격이 향후 몇 년간의 수익을 결정하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지금의 낮은 전력 가격이 장기계약의 초기 협상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발전 업계는 지금처럼 약세가 계속되는 상황이라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장기계약거래는 전력 가격 폭등에 대비하고자 계획됐다. 지난 2011년 9·15 순환정전 후 전력 부족에 따른 비정상적인 가격 상승이 계속되면서 한전과 발전사 간 현실적인 가격으로 거래하자는 취지였다. 전력 가격이 폭등하면 한전이 수혜를 보지만 반대로 발전사는 가격 폭락에 대비한 보험을 들 수 있다.
발전사들은 만약 지금의 가격 수준으로 장기계약을 맺으면 폭락에 대비한 보험성은 없고 폭등을 막는 제한 가격 효과만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더욱이 석탄화력 발전사업자는 선택의 여지없이 장기계약을 맺어야 하는 만큼 한전이 송주법·배출권거래제 등 잠재적 인상 요인을 반영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바람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또다시 전력 수요 전망에 실패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발전 연료에 10%가 넘는 개별 소비세를 부과해도 시장 가격이 하락하는 것은 공급 과잉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8600만㎾였던 총전력 공급 설비는 지금 9100만㎾로 늘었다. 1년 새 원전 다섯 기 규모의 발전소가 새로 들어선 셈이다.
발전 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전력 가격이 낮은 시점에서 장기계약거래는 발전사에 불리한 점이 많다”며 “지금 시장 상황과 함께 앞으로의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