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 게임사 중 60~70%에 달하는 기업이 중국자본을 쓴다고 합니다.”
이재홍 한국게임학회장(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은 “중국이 우리의 게임 콘텐cm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기술력, 개발 노하우가 넘어가는 제2 쌍용자동차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차이나 머니의 한국 공략이 갈수록 거세졌다. 게임은 중국 자본이 눈독을 들이는 ‘한류 콘텐츠’ 중 하나다. 중국 내 모바일 게임이 성장일로를 달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자본이 대기업부터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기업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투자 줄자 구세주로 등장한 중국
개발사 입장에서 ‘차이나 머니’는 반가운 존재다. 한 소규모 모바일 게임사 사장은 “한국 자본의 경우 심사 등 투자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운데 비해 중국 자본은 그렇지 않다”며 “소규모 개발사는 수억원 자금도 굉장히 급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기댈 수 있는 것은 중국 뿐”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 자본의 특징은 △신속 △대규모 △무조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중국 게임을 서비스하는 한국의 한 온라인 게임 대행사는 올해 여름 중국 투자자로부터 석 달간 연속 1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마케팅 비용으로 지급 받았다. 집행에 특별한 조건은 붙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2010년 이전 중국 발 계약 사고가 몇 건 터지면서 ‘중국 자본은 못 믿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라며 “부정적인 인식을 넘기 위해 중국 자본이 누구보다 깔끔하게 결제하는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중국 텐센트로부터 5300억원 자금을 유치한 넷마블게임즈의 권영식 사장은 “중국 게임사들이 한국 개발사에 원하는 것은 양질의 게임을 공급받는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한국의 개발력을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날로 성장하는) 중국 시장에서 제대로 된 라인업을 갖추려면 한국 게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이나 머니 독주, 생태계 기형화 불가피
게임 산업이 차이나 머니를 반기는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결국 콘텐츠, 창조 산업의 중국 종속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윤형섭 상명대 교수(게임학과)는 “특정 해외자본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다 보면 결국 종속화되기 마련”이라며 “중국 시장이 요구하는, 그쪽에서 통용될 수 있는 게임만 만들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중국 요구대로 만들거나 수정해 중국 시장에 진출한 몇몇 게임들이 크게 흥행에 성공한 사례가 그 증거로 제시된다.
윤 교수는 “이런 사례가 늘어날수록 중국 자본의 요구는 노골화되고 우리나라 게임산업은 창조적 토대를 잃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등이 그랬듯 ‘콘텐츠 하청 국가’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안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국내를 비롯해 유럽, 북미 등 대형 시장 자본을 적극적으로 우리나라 게임산업에 끌어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투자를 유도할 전문가그룹 육성도 중요한 포인트로 꼽혔다.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국내 자본이 게임산업에 투자를 꺼리는 이유 중 첫번째는 흥행 가능성을 점치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거대 중국 자본은 알박기 식으로 유력 게임에 투자를 하지만 국내 자본은 상대적으로 신중하다”고 설명했다.
심사단의 자질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VC 관계자는 “국내 투자 심사단의 경우 게임산업 종사자나 학계 등에서 추려 꾸리는데 솔직히 제대로 성공 가능성을 가려내는 경우가 드물다”며 “심사단조차 투자 가능 게임을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뜻 거액을 내놓을 투자자는 없다”고 짚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개발이 워낙 암암리에 진행되는 문화다 보니 투자 유치나 시장상황을 공론화할 정보 교류의 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게임업계가 현재의 펴쇄적인 문화에서 좀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 자본 유입을 막을 수 없다면 북미, 유럽 등 중국 이외 시장에서 투자를 유치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국적 자본이 특정 지역 종속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한국 게임의 가능성을 중국 이외 시장으로 확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특히 대형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투자자를 끌어들이면 최소한 글로벌 진출이라는 큰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