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고 최순달 장관을 보내며

[데스크라인]고 최순달 장관을 보내며

“난 현충원 갈 수 없을 것이야, 이곳이 내 묻힐 곳이니 잘 봐두시게!”

얼마 전 고인이 된 최순달 전 체신부 장관이 지난 여름 이천 호국원을 방문해 부인인 홍혜정 여사에게 남긴 얘기다. 학도병으로 6·25에 참전했으니, 최소한 거긴 묻힐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최 전 장관은 그러나 후배들의 역할에 힘입어 현충원에 안장됐다.

발빠른 움직임을 보인 건 ETRI였다. 기민했다. 장관 다섯 명을 배출한 IT본산답게 추진력이 돋보였다. ETRI의 제안을 받은 미래부는 국가보훈처와 함께 고인의 현충원 안장을 위해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사흘 만에 추서해 유족에 전달했다. 평소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례는 ETRI 장으로 치렀다. 최문기 전 미래부 장관이 영결식에서 기꺼이 추도사 맡았고, 김흥남 ETRI 원장은 조사를 맡았다.

ETRI에서 14년을 근무했던 최양희 미래부 장관도 고인을 현충원으로 모시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최 전 장관은 대전국립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 31호에 잠들어 있다.

사실 최 전 장관은 과학기술계에선 국보급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인공위성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우리별’을 쏘아 올리며 우주개발 R&D의 씨를 뿌렸다. 이 씨앗은 후에 나로호와 다목적실용위성으로 이어졌다.

전기통신연구소(ETRI전신) 소장 시절엔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을 진두지휘하며 우리나라 1가구 1전화기 시대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업적에 비하면 평소 대접은 소홀했다는 평가다. 오죽했으면 그가 쉴 자리로 ‘호국원’을 먼저 떠올렸을까.

과학기술계 인물이 현충원 묘역에 안장된 사례는 지금까지 통틀어 총 4명이다. 국가·사회 공헌자 묘역에 우리나라 과학입국의 뼈대를 세운 최형섭 과기처 장관이 잠들어 있고, 살신성인의 행동을 보여준 전재규 세종기지 연구원이 의사상자 묘역에 안장돼 있다.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이태규 우리나라 제1호 화학박사가 있다.

그동안 여론은 과학기술인들의 위상이나 안위를 챙기기보다는 ‘실적 없다’는 비판에 쏠려있었던 게 사실이다. 특히, 최근엔 일본은 노벨상을 19개나 탔는데, 너희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난리부터 쳤다. 과학기술인에 대한 대우는 늘 뒷전이었다.

중국에선 지난 2009년 췐쉐썬(錢學森)이 영면에 들었을 때 중국 국영TV인 CCTV가 모든 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를 내보냈다. 그의 장례식엔 당시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를 비롯한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참석할 정도의 ‘국장’급 예우를 했다.

우리나라가 노벨상을 못 탄 이유를 대라면 크게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기초과학에 대한 심지있는 투자 부족과 행정중심형 R&D 체계, 과학기술인들을 과제의 노예로 만든 일, 그리고 마지막이 가장 중요한 처우다.

과학기술계가 성과를 제대로 못 냈다고 무조건 혼낼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번쯤 공과를 제대로 따져보았으면 하는 유혹에 빠진다.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