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도, 원칙도 없다. 미래창조과학부의 700㎒ 주파수용도 재검토에 대한 산업계 반응이다. 미래부는 국회 상임위와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이동통신용으로 할당한 이 주파수 용도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무리 재난망 구축을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하나 ‘재검토’는 아예 꺼내지도 말았어야 할 단어다. 정부 결정 사항을 스스로 뒤집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특정 이해관계자와 정치권 압박에 밀려 원칙을 부정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다. 줄기차게 방송용 할당을 요구한 지상파방송사와 방송사 눈치를 보는 정치권 압박에 정책 방향을 바꾸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정책 신뢰성도 한꺼번에 허물어졌다.
문득 10여년 전 디지털방송(DTV) 전송방식 논쟁이 저절로 떠오른다. 정부는 일찌감치 DTV 전송방식을 미국식으로 결정했지만 지상파방송사의 유럽식 채택 압박으로 4년간 지루한 공방을 벌였다. 정부와 지상파방송사는 공동 현지실사 끝에 2004년 미국식으로 최종 결정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손실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재검토 입장 선회로 700㎒ 주파수 용도 논란은 제2의 DTV 논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700㎒ 주파수 논쟁이 DTV 논쟁 때처럼 애초 결정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아직 높다. 국제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방송용 용도 지정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한 국력 낭비 책임을 과연 누가 질 것인가. 정부인가, 국회인가, 지상파방송사인가.
미래부가 힘이 센 지상파방송사와 정치권 공세를 외면하기 힘든 사정을 이해한다. 더욱이 단통법 사태로 궁지에 몰린 상태다. 그러나 단통법에 대해 그렇게 엄정한 태도를 보인 미래부가 이 사안보다 훨씬 국익과 직결된 700㎒ 주파수 사안에 이렇게 무른 태도를 보였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DTV 논쟁 때에 정부는 원칙이라도 지켰다. 지금은 소신은커녕 원칙마저 내팽개친 모양새다. 정치 흥정에 응한 것 자체가 문제다. 이러한 미래부에게 과연 우리 미래를 맡겨야 할지 회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