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행정부 차원에서 공공정보 개방과 공유를 위한 정부3.0 정책, 국민과 기업의 불편 해소를 위한 규제개혁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들 정책의 효과는 앞으로 행정부 스스로 작성해 발표하는 성과보고서 등에 자세히 나타나겠지만, 현시점에서 이들 정책이 어떠한 확고한 철학과 목표 아래 진행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특히 국가의 예산·조직·인력 등을 투입해 추진하는 정책이라면 국민이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있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예상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이는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헬스케어와 이와 융합된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규제의 사전적 의미는 규칙이나 규정에 의해 일정한 한도를 정하거나 정한 한도를 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이에 적정하고 합리적인 규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포섭하는 한도가 시대적인 요구나 인식, 환경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규제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지금의 헬스케어와 IT 관련 규제는 어떠한가. 인식의 전환, 즉 패러다임 시프트가 강조되고 기존의 관념이 바뀌고 있는 현실에서 고도로 발전된 IT와 헬스케어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틀에 입각한 한도 혹은 규제를 정하고 있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10년, 20년 이상 된 법·제도적 틀에 갇혀 이를 깨뜨리지 못하고 그 안에서 개방, 공유, 규제개혁이 논의되고 있는 느낌이다.
헬스케어 이노베이션은 요새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됐다. 헬스케어의 급격한 변화가 이미 도래했거나 가까운 시일 내 도래할 것임을 느끼게 해준다. 급격한 변화에는 항상 위험을 수반하는데 그 위험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규제당국이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조직 이기주의 등 내부문제로 그 위험 관리를 위한 활동의 틀을 시의 적절하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위험관리의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행정부 나아가 국회는 한시라도 빨리 시대 변화에 맞는 확고한 규제 철학과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시대의 화두인 헬스케어와 IT융합에 대해서도 새로운 틀을 만들어 그 불확실성으로 인한 위험을 해소함과 아울러 그에 알맞은 규제의 융합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최근 미국 행정부는 헬스IT와 관련해 관계부처인 식품의약품청(FDA), 연방통신위원회(FCC), 국립헬스정보기술조정국(ONC) 공동으로 규제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보고서(FDASIA Health IT Report, 2014.4.)를 공개했는데 2012년에 있었던 미 의회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이는 헬스IT의 규제를 위해선 특정 정부기관의 간여만으로는 부족하고 관계기관이 전 방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우리나라 행정부와 국회도 이를 참고해 적극적인 자세로 기술변화에 따른 새로운 규제의 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정보기술에 통신기술이 더해져서 정보통신기술(ICT)이 급속하게 발전하는 시대다. 피터 드러커는 1969년에 ‘단절의 시대(Age of Discontinuity)’라는 책에서 지식사회의 도래를 예견하면서 기술 발전이 가져올 거대한 변화를 ‘단절’이라고 했다. 또 선진 경제체제가 빠른 혁신과 변화를 추진하려면 기술의 변화를 예상하고 기술 발전이 가져다줄 성장기회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함을 지적한 바 있다. 지금의 기술 변화 상황, 즉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 및 타 기술과의 융합은 이러한 단절에 해당하지 않는가 싶고, 그렇다면 이러한 기술 발전을 사회 전체의 성장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유국렬 법무법인 양헌 변호사 gry@kimchangl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