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정의 신문고]`10억원의 비밀`과 `M&A 공동펀드`

최근 기업 최고경영자(CEO) 몇 명을 만났습니다. 공교롭게도 소프트웨어(SW)·솔루션으로 한 해 70억~8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는 기업 CEO였습니다. 이들 기업 직원도 70~80명이라고 합니다. 1인당 매출액 1억원 꼴입니다. 과거 전자부품 제조 분야를 취재하던 시절 1인당 매출액 1억원이면 괜찮다고 했습니다. 세월이 20년 가까이 지났는데 요즘 SW 업계에 이런 공식이 그대로 적용되는 모양입니다.

이들 CEO의 고민 역시 비슷했습니다. 연매출액 70억~80억원 때가 정말 어중간하다는 것입니다. 직원이 20~30명 정도일 때는 몸이 가벼워 뭘 하더라도 빠르게 척척 진행되던 일이 느려지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렇다고 업무 시스템이 온전히 갖춰진 것도 아니어서 누구 하나 결원이 생기면 해당 업무가 마비되기 일쑤랍니다. 기업은 어느 정도 커진 것을 느끼는데 덩치에 맞는 시스템이 덜 갖춰진 결과입니다.

많은 CEO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건 매출액 100억원 이하일 때와 이상일 때의 경영감각이라고 합니다. 100억원이 넘어서면 회사가 시스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CEO들이 점프 업을 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SW를 개발해 매출액 100억원을 넘기란 쉽지 않습니다.

기업 규모를 키우는 대표적인 방법은 인수합병(M&A)입니다. 하지만 M&A하기로 의기투합한 기업들이 짝짓기에 성공하지 못하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상당수가 ‘10억원’ 때문에 협상이 깨진다고 합니다. 100억원짜리 기업이 매물로 나왔는데 사려는 사람은 80억원을 제시하고 파는 쪽은 10억은 어떻게 양보하겠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고 버티기 때문입니다. 10억원의 갭이 M&A를 망쳤다고 해서 ‘10억원의 비밀’이라고도 한답니다.

이럴 때 대기업과 정부가 공동으로 조성한 M&A 펀드가 있으면 훌륭한 조정자 역할을 합니다. 정부나 대기업이 지분 참여하면서 M&A는 성사되고 합병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기업 신뢰도는 올라가고 위험은 줄어드는 셈입니다. 사실 대기업과 정부가 참여하는 M&A 공동펀드를 조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 나온 게 아닙니다. 전례가 없기 때문에 만들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창조경제 시대입니다. 형식적인 틀을 깰 수 있어야 합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입니다.

주문정기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