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을 집적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우리나라가 지난 수십년간 소재 부품 국산화를 위해 노력해온 대표적인 산업이다. 기술 발전으로 반도체 회로 선폭이 20나노대에서 10나노대로 더 얇아지고 디스플레이는 더 밝고 선명한 것은 물론이고 충격에도 강한 새로운 소재와 기술이 필요해졌다. 자동차의 경우 제조사가 궁극의 목표로 삼은 무인 자율 주행은 첨단 반도체 기술이 없으면 실현이 불가능할 정도다.
특히 급부상한 사물인터넷(IoT)은 센서와 네트워크 기술 발달로 조금씩 실현 가능한 첨단 서비스가 되고 있다. 첨단 기술과 소재, 부품, 생산 장비가 맞물려 조화를 이뤄야만 실제 제품으로 만들고 서비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시장에서 핵심 분야의 국산화는 더욱 절실하다. 외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여러 분야의 경험상 차세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소재 부품 강국이 먼저 돼야 한다.
◇시스템반도체 뒤처져 사물인터넷·웨어러블 선점 비상
시스템반도체는 세계 메모리 시장 중 75~80%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메모리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최신 기술과 공정으로 앞섰지만 시스템반도체 시장 현황은 초라하다.
2013년 세계 반도체 기업 매출 순위를 살펴보면 인텔, 삼성전자, 퀄컴, 마이크론테크놀로지, SK하이닉스, 도시바세미컨덕터,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브로드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 순이다. 상위권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사업에 편중된 것을 감안하면 향후 사물인터넷과 웨어러블 기기 등 새로운 시스템반도체 시장이 커지면 세계 시장 순위가 바뀔 여지는 충분하다.
새로운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려면 어떤 핵심 기술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사물인터넷에서 제어·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프로세싱 기술을 비롯해 센싱, 연결 관련 기술이 핵심이라고 분석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개체가 오는 2020년 약 260억개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각 개체의 정보와 주변 환경 정보를 수집하고 개체끼리 데이터를 주고 받으려면 센싱과 네트워크 기술 발전이 필수다.
현재 ARM, 퀄컴,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인피니언 등이 무선 송수신 칩, 센서, 마이크로컨트롤러 등으로 사물인터넷 환경에 대응하고 있다. 반도체 외에 모듈, 단말, 네트워크 서비스, 플랫폼 등 분야의 기업도 이 시장을 준비 중이다.
국내 시스템반도체 기업도 사물인터넷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지만 원천 기술이 취약하다. 센서나 관련 부품 시장에서 이미 세계적 기업들보다 뒤처졌다. 일부 기업이 센서 개발을 시작했고 정부 주도로 모바일용 CPU 개발에 나섰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에 미래부와 산업부는 내년부터 스마트센서 연구개발과 실증·시범사업을 연계해 핵심 기반 기술과 상용화 기술을 갖추는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사물인터넷과 주력 산업에 필요한 첨단 센서 응용기술과 상용화 기술을 마련해 나갈 방침이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국산 소재·부품으로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차세대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자 소재부품 국산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기존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시장에서 소재부품 대부분을 외산에 의존했던 과오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에서 똑같이 범하지 않기 위해 전략적으로 국내 업체들과 노력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모두 OLED 패널에 사용하는 주요 발광 소재 50% 이상을 이미 국산화했다. 외산 기업에 독점 공급권을 주지 않겠다는 전략으로 일찌감치 국내 업체들과 함께 공동 개발해 공급체계를 이원화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 발광층 소재를 에스에프씨(SFC), 덕산하이메탈, 두산전자 등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OLED 공통층 소재 영역에서도 전자주입층·전자수송층(EIL·ETL) 소재는 다우케미켈과 LG화학이, 정공수송층·정공주입층(HTL·HIL) 소재는 덕산하이메탈이 각각 1차 협력사다. 이 외에도 기판과 인캡슐레이션 부분에서도 국내 업체들과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역시 LG화학을 통해 공통층 소재를 공급받고 있고 덕산하이메탈도 공급할 예정이다. 발광 소재 영역에선 여전히 UDC, 머크 등 외산 제품에 의존하고 있지만 단계적으로 국산 소재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용 기판 소재 개발에도 양사는 적극적이다. 국내 협력사와 함께 내구성이 뛰어나면서도 투과율이 높은 신소재 개발에 한창이다.
업계 관계자는 “OLED 시장에선 국내 업체가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만큼 소재부품 등 후방 생태계도 직접 꾸려 나가야 한다”며 “국산화를 이뤄 국내 전체 산업계가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3D 프린팅 소재 개발도 탄력
3D 프린팅 소개 개발 사업도 최근 탄력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3D 프린팅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소재 산업도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주요 소재 업체들도 신성장 동력사업으로 적극 추진하고 있다.
LG화학·SK케미칼·제일모직·대림화학·창성·신아티앤씨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LG화학은 ‘아크릴로니트릴 부타디엔 스티렌(ABS)’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ABS는 충격에 강하면서도 가벼워 금속 대체품으로 널리 쓰인다. LG화학은 국내외 ABS 생산량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 들어서는 플라스틱 계열 소재뿐 아니라 금·은·동·철 등 금속 소재는 물론이고 나일론·우드·세라믹 등 다양한 재료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금속소재전문업체 창성은 일찌감치 이 시장 성장 잠재력을 인지하고 3D 프린터에 들어갈 원료로 금속 페이스트를 양산하고 있다.
이외에도 신아티앤씨는 최근 국내 최초로 광경화수지조형(SLA) 방식의 3D 프린트용 고투명 소재 개발에 성공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가의 외산 소재를 대체해 획기적인 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3D 프린터 제조업체들과의 보다 광범위한 협력으로 세계 시장 진출에도 적극 나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