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회사가 줄줄이 도산하거나 폐업하고 있다. 각종 소송에 휘말린 사례도 급격히 늘고 있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이처럼 블랙박스 시장이 침체를 면치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저가정책으로 인한 저급 품질과 업체 도산으로 고객 사후 관리가 제대로 안돼서다. ‘블랙박스=불량제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정점에 달하고 있다.
상당수 제조사와 유통사의 얄팍한 상술이 소비자들의 블랙박스 오남용을 부추겼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 부분도 블랙박스 시장이 침체된 이유 중 하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주차녹화를 지원하는 상시 주차녹화 기능이다.
현재 상시 주차녹화를 지원하는 대부분 제품들은 상시 전원 케이블을 자동차용 전원 퓨즈에 인위적으로 연결해 사용함으로써 기본적으로 제품 안정성과 신뢰성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일부 업체는 배터리 전압이 떨어지거나, 실내온도가 올라가면 장치를 보호하는 기능을 보완했다고 하지만 이 역시 미봉책에 불가하다.
차량용 블랙박스의 정확한 명칭은 ‘차량 운행영상기록 저장장치’로, 이는 차량 운행 시에만 사용하는 제품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많은 제조사들이 주차 시에도 녹화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공인되지 않은 상시 주차녹화 기능을 제품에 탑재해 판매함으로써 선량한 소비자들을 우롱하며 많은 피해 사례를 낳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도 상시전원 사용으로 배터리 방전, 차량 성능 저하 같은 문제 발생 시 품질을 보증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자동차는 시동이 꺼지면 모든 작동을 멈춰야 하는데 상시 전원 케이블 등을 자동차 전원 퓨즈에 인위적으로 연결해 자동차 전원을 강제 사용하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매우 비정상적 행위라는 설명이다.
더욱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블랙박스에 사용되는 반도체 부품은 상온에서만 사용할 수 있게 제조된 제품들이다. 따라서 고온의 실내에서 상시 주차녹화를 할 때 제품의 심각한 손상은 물론이고 차량 화재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블랙박스의 주차녹화 기능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두 가지 기술이 선행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첫째, 전원 문제다. 현재로서는 자동차 전원을 사용해 시동이 꺼진 후 주차녹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별도의 전원장치 및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둘째, 제품의 제조규격 문제다. 전기전자제품에 적용되는 반도체 및 부품은 그 신뢰도와 특성에 따라 상용, 산업용, 전장용, 군사용, 우주항공용으로 분류된다. 이 중 상용급이 부품신뢰도와 열적 특성이 가장 낮은 등급인데 현재 모든 블랙박스가 상용급을 채택하고 있다. 상시 전원을 이용한 상시 녹화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열적 내성 및 신뢰도가 높은 전장용 부품이 채택돼야 하나 아직 그렇지 못한 현실이다.
현재 일부 회사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며, 이와 더불어 차별화된 품질과 획기적인 고객 사후 관리 프로그램으로 고객들에게 어필하고 있어, 머지않아 보다 신뢰할 수 있고 품질 좋은 제품들이 소비자들로부터 다시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최근 블랙박스 기술은 사고와 관련된 주행 영상 녹화 본연의 기능 이외에도 스마트폰 통신 기술과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 무선통신 솔루션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블랙박스를 개발하는 등 계속 진보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블랙박스 시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과거 저가·저품질의 비양심적인 제품이 판을 치던 시대는 이제 철저히 사라지고, 품질과 기술력을 앞세운 고객에게 정직한 제품만이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어 새로운 블루오션을 열어갈 것을 확신한다.
이정원 세미솔루션 대표 j.lee@semisolut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