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학자 중 한 명인 아이작 뉴턴이 1642년 12월 25일 영국 울즈소프에서 태어났다.
흔히 뉴턴을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물리학자로 알고 있지만 그는 수학자, 천문학자, 광학자, 자연철학자, 신학자, 연금술사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심지어 국회의원까지 했다.
뉴턴은 유복자로 태어나고 세 살 때 어머니가 재혼하는 등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가 죽을 때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유년기의 기억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어릴 때부터 총명했던 뉴턴은 외삼촌의 도움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을 한창 보내던 중 영국에 흑사병이 대대적으로 유행하자 대학교가 폐교했고 뉴턴도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에 2년간 머무르던 이 때 유명한 사과 일화를 비롯해 미적분 계산법, 빛의 색 등 다방면에서 의미 있는 발견을 한다. 뉴턴 스스로 휴학기간을 ‘발견의 전성기’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1667년 학교가 다시 문을 열자 뉴턴은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반사 망원경을 만들었다. 이 공로로 1672년 왕립학회 회원으로 뽑혔다.
교수가 되어 강의와 연구를 계속하던 뉴턴은 1687년 근대 이론물리학의 초석을 다진 역사적인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를 출간한다.
이 책에는 뉴턴의 세 가지 법칙인 ‘관성의 법칙’ ‘운동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의 내용이 담겨 있고 만유인력과 천문학도 다루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떠올렸던 아이디어가 20년이 지나 프린키피아에서 이론화됐다.
뉴턴은 신학에도 관심이 많아 성서에 기록된 내용을 증명하려 고대사 해석을 검증하는 등의 활동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또 1689년에는 국회의원으로 선출됐고 왕립 조폐국 이사를 거쳐 조폐국 장관까지 역임했다. 왕립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뉴턴은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