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는 온 나라가 창업경제로 ‘몸살’을 앓았다. 정부출연연구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창업과 기업지원 관련 시스템이 쏟아졌다. 당장 성과가 나온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씨앗을 뿌려 훗날을 도모했다.
창업과 실패에 대한 후속대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에 대한 경험론적 사고가 영향을 미친 결과다.
벤처 붐을 경험해본 세대는 창업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벤처는 잘하면 ‘벤츠’를 타고, 잘 안되면 ‘벤치’ 신세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앞뒤 안 가린 모험보다는 이중, 삼중 안전장치를 마련해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고 창업에 도전하는 분위기가 주류다. 특히 기술이 좋다고 무작정 나서는 예는 없다. 시장이 없는 기술, 아무도 사지 않는 ‘세계 최초, 최첨단 기술’은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창업 생태계상 어느 기업이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죽음의 계곡’과 ‘다윈의 바다’에 대한 인식도 많이 올라갔다. 핵심기술을 양산화하는 과정이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것만큼 어렵고, 또 ‘죽음의 계곡’을 건너면 경쟁상품과 생존 경쟁을 펼쳐야 하는 ‘다윈의 바다’를 만나게 된다는 것쯤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 해 100만명이 창업하지만 3년을 유지하는 기업 수는 절반도 안 된다.
정부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다. 이를 거들기 위한 인프라와 시스템도 의외로 많이 만들어졌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중소기업청 관련 기관과 시스템을 찾아보면 족히 수백개는 된다.
창업 시스템에도 숨통이 트였다. ETRI 연구원 28명이 무더기로 나가 창업도 했다. 와이파이 칩으로 창업한 뉴라텍 얘기다. 이 기업은 창업자들이 실패하면 모두 ETRI로 되돌아오면 된다. ‘나가면 끝’이던 시절과는 달리 실패에 대한 안전판이 마련돼 있는 것이다. 뉴라텍은 현재 뉴라콤이라는 미국법인까지 만들어 세계시장을 공략 중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아예 대기업이 붙어서 창업지원에 열을 올리고 있고, ETRI는 예비창업제를 만들어 연구원 창업을 독려 중이다. 시제품 제작 및 시험인증 등을 지원하는 인프라인 ‘BIZ-무한상상실’은 창업의 산실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중소기업지원센터와 창업공작소를 운영해 성과를 냈다. 이곳을 이용해 이투아이디어와 삼보인프라 등이 화장품 정리함과 하수오염물제거 스크린 제작으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40여개 관련 기업 네트워크에 공을 들이고 있고, 국가핵융합연구소는 과제 설명회를 통해 기업과의 동반성장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구석도 있다. ‘그 밥에 그 나물’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힘든 건 알지만, 매년 해오던 기업보다는 새로운 기업을 찾아 지원해 달라는 주문이다.
하나 더 덧붙이면, 투자와 함께 M&A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기업이 성공하기까지 무려 50회 이상 인수합병(M&A)이 일어나는 실리콘밸리의 배울 점이다.
창업초기 엔젤 붐을 일으키고 연쇄 M&A가 만들어져야 한다.
대안은 ‘국민엔젤’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을 대상으로 기관을 만들어 투자공모를 진행해도 좋다. 뒷거래도 막을 수 있다.
창업이 어려운 건 아니다. 돈이 돌면 돈이 벌리게 돼 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