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특허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관계

정병직 특허법인 대아 대표변리사,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전문위원
정병직 특허법인 대아 대표변리사,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전문위원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특허 포트폴리오 구축은 특허의 성장을 전제로 하며 특허의 성장은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으로 나눌 수 있다. 특허의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최고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으나 과연 그런 것일까. 진정 특허의 양적 성장은 배제하고 질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이 정답일까.

몇 년 전 국내 중소기업 A사는 일본 대기업인 B사로부터 특허침해 경고장을 받았다. 하지만 A사는 굴복하지 않고 B사의 특허들을 면밀히 분석해 B사의 특허들이 특허성에 하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강경 대응했다. 그러자 B사는 한국·일본도 아닌 제3국에서 A사를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소송은 중소기업 입장에서 값비싼 해외대리인들의 소송비를 감당해내기 어렵다. B사는 이러한 중소기업의 약점을 노리고 제3국에서 소송을 벌이는 전략을 택했을 것이다.

일단 특허전쟁이 벌어지면 상대방이 유리한 곳이 아닌 우리가 유리한 곳을 주요 전장으로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A사는 이미 B사의 한국 특허 분석을 완료했기 때문에 곧바로 B사의 특허들에 무효심판을 제기했다. 한국에서 등록된 B사의 특허들은 하나둘씩 무효가 되기 시작했다.

비록 특허소송은 제3국에서 시작됐지만 한국에서 B사의 특허들에 대한 무효결과는 전체적인 판세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서 계속되는 특허의 무효 판결은 B사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A사는 한국에서 벌어진 심판과 소송을 모두 이겨 전체 판세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기에 이제는 B사에 끌려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해당 기술의 특허권이 거의 없는 A사 입장에서 처음부터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던 B사를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승소한 무효심판의 결과였다.

로열티 계약은 금액이 얼마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사실 협상은 전체적인 판세가 A사에 유리한 상황에서 시작됐기에 A사에 좋은 방향으로 진행됐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로열티 금액을 조정할 때 A사는 불리한 조건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보유 중인 특허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A사에 수십 건 정도의 특허권이라도 있었다면 특허의 실질적인 질적 가치는 차치하더라도 B사에 크로스라이선스를 제안해 가격협상에서 매우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테이블에 직접 앉아 협상을 하는 상대방은 기업 총수와 같은 경영진이 아닌 특허팀이다. 대기업이라는 조직의 생리상 아무런 근거 없이 임의로 가격을 싸게 해서 협상을 하기는 어렵다.

만약 크로스라이선스라도 가능한 조건이었다면 파격적인 가격으로 협상했다더라도 B사의 특허팀이 이에 대해 자사 경영진을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A사는 B사와 크로스라이선스를 할 수 있는 특허가 거의 없었다. 때문에 B사의 특허팀에 그들의 경영진을 납득시킬만한 명분을 제공해주기가 어려웠다.

실제로 협상장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특허권을 양적으로 갖고 있으면 해당 특허들 모두의 품질·가치를 따지기엔 시간·비용도 많이 들고 쉽지도 않다. 따라서 절대 특허의 양적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

특허의 질적인 부분만을 강조해 양적 부분을 소홀히 하면 상대에게 우리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쉽게 분석당할 수 있다. 군대만 보더라도 총·대포·보병 등 기본적인 무기체계를 갖춰놓고 보다 강력한 무기를 보유해야지 기본 무기 없이 강력한 무기만 가진 나라는 없다. 기본적 포트폴리오 없이 강력한 특허 몇 개만 있다면 상대방이 이를 분석해 파괴하면 실질적으로 무장해제되는 셈이다.

국내 대기업들도 과거 특허의 양적 성장을 구축해놨기 때문에 최근 특허의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서 설명한 A사는 로열티 예상 금액이 특허 수십건을 확보했었을 때보다 수십배 이상 컸다. 이처럼 이제 막 발을 들인 중견·중소기업에는 양적 성장을 전제로 한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정병직 특허법인 대아 대표변리사 jbj@ipdraju.com